[커피계 '제3의 물결' 스페셜티 커피] 한 잔을 마시더라도 특별하게…SPECIALTY 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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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턴트에서 시작한 커피 열풍이 이젠 제3의 물결인 스페셜티 트렌드로 변화하고 있다. 사진 강원태 기자 wkang@·모모스커피 제공

저는 지금 부산 금정구 부곡동의 한 커피숍 2층에서 '케냐' 커피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타입인 중배전(커피 생두를 볶아서 원두로 만드는 로스팅 작업으로, 중간 볶음)은 아니지만 약배전도 가위 나쁘지 않아서 이 커피점의 케냐도 즐겨 마시는 편입니다. 커피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제 취향부터 드러내는 이유는, 커피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몇 년째 커피를 즐기다 보니 어느 정도 좋아하는 경향이 생기더라는 말씀을 전하고 싶어서입니다. 최근 몇 년 새 커피 업계에서 일고 있는 '제3의 물결, 스페셜티 커피' 바람은 부산도 예외가 아닙니다. 부산의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 분위기를 전합니다.

■커피 업계에 일고 있는 '제3의 물결'

참고로, 이 용어는 미국 커피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미국은 세계에서도 가장 트렌디한 커피를 다루는 곳이고, 스페셜티 커피 개념을 처음으로 만든 곳이라고 하네요.

인스턴트 이은 대기업 프랜차이즈
대중화 선도했지만 뭔가 아쉬움 남겨

내 취향에 맞는 원두 본연의 맛은?
거대한 새 물결 전 세계로 확산

모모스·테라로사·블랙업·빈 스톡…
부산에도 구석구석 스페셜티 전문점


흔히 말하는 커피 업계의 1차 물결은 인스턴트커피가 생겨나며 급속도로 확산한 시기, 2차 물결은 에스프레소가 가져다 준 커피의 대중화 시기로, 어디를 가든 획일화된 맛을 제공합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다크 로스팅(강배전)된 원두 덕분이었습니다. 피츠 커피, 스타벅스 등의 기업이 대표적입니다.

제3의 물결은 대형 브랜드가 주도하는 획일화된 커피에서 벗어나 본인의 취향에 맞는, 원두 본연의 맛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에르나 크누첸 여사가 언급한 '산지의 특별한 기후로 인해 독특한 향미를 가지는 커피'라는 의미의 스페셜티(specialty·특수성, 전문, 자랑할 만한 물건이라는 뜻) 커피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음용 방법의 변화가 아닌, 커피의 재배부터 가공, 로스팅, 추출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변화시키는, 전에 없던 커다란 물결을 일으키며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중입니다.

■스타벅스 리저브, 블루 보틀, 그리고 테라로사

부산만 해도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대세지만 커피 업계의 제3의 물결을 이어받아 개성을 중시하는 소규모 개인 커피 전문점도 하나둘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내년이면 10년을 맞는 '모모스커피'(051-512-7036·본점 부산 금정구 오시게로 20)도 그중 하나입니다. 모모스 이현기(39) 대표는 "예전 커피숍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차린 '생계형 창업'이 많았다면 이제는 자본이 있거나 땅이 있어서 제대로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 대형 카페로 가는 추세"라면서 "맛있는 재료, 좋은 장비는 기본이고, 그 공간에 감성을 얼마나 잘 담아내느냐에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부산 금정구 부곡동 '모모스커피' 실내 풍경
모모스만 해도 커피콩을 직접 수입해서 볶습니다. 그저 샘플만 받아서 볶는 게 아니라 거의 매년 지구 반대편 커피 농장까지 찾아가서 커피콩 농사를 누가, 어떻게 짓고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하고 소통합니다.

이 대표는 모모스를 부산의 관광자원으로, 미슐랭가이드에도 오를 수 있을 만큼의 커피 전문점으로 만들고 싶답니다. 지금까지 없던 커피의 멋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모모스 같은 곳이라면, 2014년 12월 스타벅스 본사가 있는 미국 시애틀에서 커피 생산의 전 과정을 보여 주는 '리저브 로스터리&테이스팅 룸'을 열어서 화제가 된 것처럼 커피 박물관 같은 카페를 부산에서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은근 기대하게 만듭니다. 커피 업계의 애플, 미국 샌프란시스코 '블루 보틀(Blue Bottle)'만 해도 커피인들이 성지처럼 모여드는 곳입니다. 커피 품질과 철학도 중요하지만 디자인과 공간의 만남도 중요하다는 것을 블루 보틀은 말해 주고 있습니다.

강원도 커피 '테라로사'가 서울·제주를 거쳐 부산까지 진출해 맛과 디자인 가구, 공간(F1963) 등으로 관심을 끄는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기 색깔이 뚜렷하든지, 히트 메뉴가 있든지

'블랙업커피'(051-806-4952·본점 부산진구 부전동 168-152) 김명식(39) 대표는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평균적인 맛이 유지되는, 실패하지 않을 확률 때문에 프랜차이즈를 찾지만 그곳에선 커피 한 잔에 담긴 가치를 느끼기 힘든 부분도 있다는 지적입니다. 김 대표는 "스페셜티 커피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카페뿐 아니라 집에서도 즐길 수 있는 커피가 되도록 도와주는 '쇼룸(showroom)' 같은 공간을 꿈꾸고 있다"면서 "대동맥 같던 커피가 실핏줄처럼 퍼지는 느낌"이라고 제3의 커피 물결을 설명했습니다.

부울경에서 '커피 좀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선 제법 유명한 박윤혁(52) 대표가 울산에서 옮겨와 지난해 11월 송도에서 개점한 '빈 스톡'(051-243-5984·서구 암남공원로 56)은 또 다른 측면에서 주목받는 곳입니다. 제대로 된 강배전 커피의 진가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인스타그램에서도 '라테 아트'가 예술처럼 펼쳐지는 장면이 줄줄 올라왔습니다.

박 대표를 스승처럼 모시는 서면의 잘나가는 로스터리 카페 'FM커피하우스&로스터스'(051-803-0926·부산진구 전포대로 199번길 26) 강무성(39) 대표는 라테를 만들 때 쓰는 우유는 쓴맛과 잘 어울리는데, 그런 의미에서 강배전 커피에 독보적인 빈 스톡 라테는 맛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흔히 '폴바셋 라테'가 맛있다고 하는 것도 우유 맛이라기보다는 폴바셋에서 라테용으로 개발한 블렌딩 커피의 배합 비율과 로스팅 정도일 거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FM커피하우스만 해도 '빅뱅'의 지드래곤이 제주에서 문을 연 카페 '몽상드애월'에 원두를 공급하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엔 박 대표가 FM커피하우스를 칭찬합니다. "에프엠(FM)은 퍼스트 무버(First mover·선도자, 원동력)의 약자입니다. FM은 도덕과 윤리성, 과학을 갖추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최고의 생두를 골라서 로스팅한 다음 합리적인 가격으로 팔고 있습니다." 강 대표가 한마디 더 보탭니다. "블랙커피 한 잔만으로는 색깔을 가져가기 힘들어서 시그니처로써 색깔을 입히려고 합니다. 쉽게 말해 히트 메뉴를 만드는 것입니다. 콜드브루에다 생크림을 얹은 '투모로우'는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블루 보틀' 민트플라자 지점 매장 밖에 고객이 줄을 서 있는 모습.
다시 '케냐' 이야기로 돌아가 봅니다. 원고를 쓰는 동안 커피가 식으면서 신맛은 더 강해졌습니다. 뜨거운 온도였을 때 느끼지 못했던 산미가 식으면서 더 잘 느껴진 덕분입니다. 새롭게 알았습니다. 다 같은 농장에서 들여온 케냐 생두라도 모모스와 FM커피하우스에선 약배전, 블랙업커피는 중배전을 한다는 사실을요. 빈 스톡 케냐는 다른 농장 생두였지만 강배전이었고요. 물론 로스팅 상태뿐 아니라 커피양, 물 온도, 추출 시간에 따라서도 커피 맛은 각기 다를 수 있습니다.

최종 선택은 자신의 입맛에 따라 커피를 자유롭게 즐기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것이 비용을 조금 더 지불하더라도 스페셜티 커피를 선택해서 마시는 진짜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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