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원의 시네아트] 고스트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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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죽음 뒤 유령이 되어 연인을 찾아간 남자

영화 '고스트 스토리'는 사랑을 잃은 이들에게 찾아온 애틋한 시간을 담은 판타지 감성 로맨스다. 더쿱 제공

모든 존재는 흔적을 남겨 세상과 연결된다. 오래된 골목길에 각자의 추억이 묻어 있는 것처럼 도시의 틈새에 시간의 두께가 내려앉아 누군가의 역사가 되는 법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다. 추억이 쌓여 관계를 형성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한 의미가 된다. 모두에게 열려 텅 빈 공간도 시간이라는 체험을 거치고 나면 누군가에게 특별한 장소가 되는 것이다.

'고스트 스토리'는 바로 이 시간의 압력과 관계의 특별함을 형상화시킨다. 표면적으로는 갑작스런 죽음으로 연인과 헤어진 남자가 유령이 되어 돌아오는 이야기지만 스크린 너머에 그 이상의 흔적들이 얼룩처럼 새겨져 있다.

독특한 화면비율과 긴 호흡으로
상실감·고립감·기억 등 형상화


여기 남자 C(케이시 애플렉)와 여자 M(루니 마라)이 있다. 두 사람은 교외의 작고 오래된 집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어느 평화로운 아침, 남자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홀로 남겨진 M은 상실감에 시달린다. 그 때 남자가 유령이 되어 깨어난다. 유령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집까지 찾아온다. 그 때부터 C의 유령은 M을 바라본다. 둘은 같은 공간에 머물지만 전혀 다른 시간 속을 떠돈다. 이윽고 M은 집을 떠난다. 떠나기 직전 쪽지를 하나 써서 벽 안 틈새에 끼워둔다. 한참이 지난 뒤 C의 유령은 쪽지를 꺼내려 벽을 파기 시작한다.

M이 떠나고도 C는 영화 속을 떠돈다. 분량으로 따지자면 훨씬 더 긴 시간을 버텨야 한다. 그는 마치 집의 화신, 아니 공간 그 자체가 된 듯 거기에 머물러 있다. 관객 또한 가늠도 되지 않는 시간의 굴레를 목격해야 한다. 그 끝에 다다르는 건 단순한 러브 스토리가 아니다. 차라리 시간의 흐름이 남긴 얼룩이라고 해두자. 이 영화는 사랑과 고독, 공허와 상실, 덧없는 시간과 기억이라는 추상적인 감각에 관한 얼룩이다. 누군가는 얼룩의 형태에서 사랑을 발견할테고, 또 다른 이는 서늘한 공허와 고독을 감지할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화두를 읽어낼 수도 있다.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건 그저 고요한 가운데 애잔하고 서늘하면서도 따스한 무언가가 스크린 위를 떠돌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스트 스토리'가 시간과 기억에 관한 색다른 감각을 일깨우는 비결은 두 가지다. 하나는 1.33: 1의 화면비, 다른 하나는 대상을 좀 더 길게 찍는 호흡이다. 독특한 화면비는 공간을 깊이 파고들어 매 장면을 하나의 액자처럼 만들어 버린다. 여기에 한 호흡 더 오래 그 자리에 머무는 카메라가 보이지 않는 감각을 형상화시켜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M의 상실감, C의 고립감, 사랑의 기억, 상실의 시간 등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감각들이 매 장면 무척 아름다운 형태로 스크린에 얼룩진다. 관객들이 각자의 체험과 해석으로 끄집어 내어주길 기다리며 스크린 너머를 떠도는 유령의 시간. 이 매혹을 정의내리기란 불가능하지만 한 가지는 단언할 수 있다. 당신은 경이로운 체험을 하게 될 것이고, 그 여운은 좀처럼 씻겨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


송경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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