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CEO에게 듣는다] 백정호 동성그룹 회장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세계 경제 흐름 따라가려면 '창조적 파괴' 필요"

백정호 동성 회장이 '정심최선'이라는 자신의 경영 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강선배 기자 ksun@

백정호 동성그룹 회장은 부산 상공계에서 '은둔의 경영자'로 알려져 있다. 부산상공회의소 부회장을 4기(12년) 동안 맡으면서도, 공식 행사를 제외하고는 거의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지난해 차기 부산상의 회장에 거론될 때도 "상의 회장은 합의 추대해야 한다"는 원칙을 앞세워 일찌감치 선을 그었다.

언론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 백 회장을 지난 22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인터뷰에 앞서 혹시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인터뷰가 잘될까?', 살짝 걱정도 했다. 하지만 그는 철학적인 깊이를 담은 경영 신념을 갖춘 논리정연한 최고경영자(CEO)였다. 그의 '은둔'은 내성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회사 경영에 충실해지려는 그의 철학 때문이었다. 그는 부산 경제가 어려운 것은 변화하는 세계 경제 패러다임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고, 정심최선(正心最善)을 바탕으로 창조적 파괴를 통해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정심최선'이 동성 핵심가치
IMF 때 정부 지원받는 대신
핵심사업 매각해 위기 탈출
최근에는 LNG 사업 착수

부산 경제와 기업 살려면
전통적인 산업구조 벗어나
새 환경에 빠르게 대응해야

■정심최선(正心最善)


동성그룹 60년 역사를 관통하는 한마디는 정심최선이다. '바른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란다. "선대 고(故) 백제갑 회장 때부터 동성의 핵심 가치인데, 오늘에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고 백정호 회장은 설명했다.

"선대 회장님은 늘 직원의 식사와 근무 환경에 신경을 썼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을 실천하셨습니다. 회사 이익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돌아갈 방안 마련에도 늘 고민하셨죠. 하지만 한 번도 그런 사실을 자랑하거나 밖으로 알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정심최선은 동성이 가장 어려웠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사태 때 빛을 냈다. 동성화학은 1997년 단기 자금 어려움을 겪었다. 백 회장은 동성화학의 핵심 사업인 접착제 부문을 매각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접착제 부문은 선대 회장이 창업할 때 업종이었고 당시에도 가장 수익이 많이 나는 분야였다. "정부나 거래처에 어떤 피해도 주지 않기 위해서는 수익이 잘 나오는 핵심 사업 부문을 매각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접착제 부문을 영국 ICI 사에 팔고 위기를 탈출했다.

■창조적 파괴

고 백제갑 회장이 병마로 누운 1988년, 30대 초반에 경영 일선에 나선 백 회장은 2008년 창조적 파괴를 통해 동성화학을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했다. 동성화학의 양적 성장이 한계에 달했다고 판단, 지주회사 '동성코퍼레이션'을 설립하고 외부 자금을 수혈했다. 이때 마련한 돈으로 2009년 경기도 안성의 화인텍을 인수하고 2014년에는 경남 김해시 장유의 복합소재 회사 TCS를 합병하면서 사업 다각화를 시도했다.

백 회장은 최근 다시 파격적 변신을 꾀하고 있다. 친환경 선박에 대한 세계적인 요구가 높아지는 현실을 간파하고, 동성화학에 LNG 추진선 탱크 개발 사업부를 만들고 제품 개발에 나섰다.

백 회장은 현재 부산 경제의 어려움을 급변하는 세계 경제 패러다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패러다임의 빠른 전환을 요구했다. 그는 "과거 산업화 시대 한국은 우등 국가였으나 새 패러다임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생각을 뒤엎는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이 올해 국내 경제는 경기 상승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이는 반도체와 IT(정보통신), 바이오 등 일부 산업에 국한된 성장이다"며 "특히 부산 경제는 조선과 자동차 등 전형적인 산업화 시대의 산업에 대부분 편중돼 있어 성장 제약 요건이 많다"고 분석했다. 

■기업 문화를 바꾸자

백 회장은 2003년부터 주한캐나다 명예영사로 부산 거주 3000여 캐나다인을 돕고 있다. 지난 19일에는 경기도 파주시 율곡습지공원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을 맞아 열린 '2018 임진 클래식' 한국-캐나다 아이스하키 행사를 후원하기도 했다. 이 행사는 한국전 당시 율곡습지공원에서 한국군과 캐나다군이 아이스하키 경기를 했던 것을 기념해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열렸다.

백 회장이 이처럼 캐나다와 캐나다 국민을 후원하는 이유가 캐나다 국민성과 문화 때문이란다. 캐나다를 방문했을 때 항상 이웃을 배려하는 국민성에 반했고, 한국전쟁 참전 때도 징집이 아니라 자원 입대로 파견 군인을 모았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한다. 아이스하키 행사에서 만났다는, 참전 캐나다 용사의 "한국을 몰랐지만, 다른 사람이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에 참전을 결정했다"는 말을 소개하기도 했다.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름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에게 너그러운' 기업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백 회장은 강조했다. 어느 곳이나 갈등이 존재하지만 '내 생각이 옳다'고만 주장해서는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임원이나 간부들에게, 회의가 열리면 먼저 말하지 말라고 요청합니다. 답답하더라도 밑에서부터 충분히 의견을 들은 뒤 마지막에 한마디 정도 할 것을 부탁합니다. 그래야 밑의 생각이 위로 전달되고 의견이 소통되면서 기업이 생명력을 갖게 됩니다."

동성화학 본사 사옥 앞에 동성화학 설립 당시 가동됐던 '최초 반응기'(사진)가 전시돼 있다. 반응기는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고로와 같은 역할을 하는데, 오랜 시간 작업으로 닳아 녹이 슨 채 한쪽 끝마저 떨어져 나가 있었다. 이 반응기는 끊임없이 창조적 파괴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심최선, 바른 마음, 인간 본성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백 회장의 철학을 상기시켜주는 듯했다.

김수진 기자 kscii@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