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그들, 이젠 공존으로] 2. 부모의 무지가 키운 병 '조현병'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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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인 다를 거야…’ 병 인정 못 하고 굿이나 최면에 기대기도

“부모의 무지가 병을 키웠습니다.”

2001년 청천벽력 같은 아들의 조현병 진단. 최옥자(가명·53) 씨는 “우리 아이도, 부모도 이렇게 힘든 삶을 살 줄 몰랐다”며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이제 막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고 ‘꽃길’만 걸을 줄 알았던 최 씨의 19살 아들은 고교 졸업 후 갑자기 ‘은둔 생활’을 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밥도 거른 채 가족과 대화도 거부했다. ‘제2의 사춘기’라는 생각에 그렇게 6개월을 흘려보냈고, 결국 입대 영장이 나오고 나서야 정신의료기관을 찾아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최 씨는 “조현병이 무엇인지,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눈앞이 깜깜했다”면서 “병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고, 도움의 손길을 구할 곳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현병 환자 가족 사전지식 없어

병동 입원 도중 퇴원시키거나

자체 판단으로 약 처방 멈추기도

가족끼리 돌보다가 우울증 번져

부산 가족 재활 단체 3곳뿐

작년 예산 총 800만 원 그쳐

병원→재활시설→가족단체

발병 초기부터 체계 마련돼야

■“굿에 최면술까지”… 무지가 키운 병

“언젠가는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겠지.”

진단이나 치료를 받지 않는 조현병 환자 가족의 마음을 옥죄는 것은 막연한 기대다. 다른 정신질환과 달리 멀쩡히 생활하다 갑자기 발병하는 특성 때문에 가족들은 예전 모습으로 돌아올 거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못한다. 병에 대한 의료적 지식이나 이해 없이 병과 맞닥뜨리다 보니 ‘귀신병’으로 취급해 버리기도 한다. 교회를 다니는 최 씨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조상묘를 옮기는 미신적 치료를 시도하기도 했다.

“부모가 제대로 알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아들의 병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조현병 환자들의 상당수는 부모 등 가족의 무지 때문에 진단은커녕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굿이나 최면 등 미신적 치료에 기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환자 본인은 자신의 병을 절대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들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대부분 조현병 가족이 병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어 하나부터 열까지 배워야 하는 실정이다. 입원 병동에 자식을 가두기 싫어 중도 퇴원시킨 뒤 스스로 돌보거나, 증상이 완화됐다는 자체 판단으로 약 처방을 멈추기도 한다. 더불어 폭력적인 행동을 눈감아 주거나 “말 안 들으면 강제입원시킨다”는 등 감정적인 말로 환자 증상을 악화시킬 때도 있다.

대학생 아들이 조현병을 앓고 있는 김 모(55) 씨는 “주치의가 2~3달에 한 번씩 계속 바뀌길래 홧김에 병원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등 감정에 따라 치료방법을 선택할 때가 많았다”면서 “병원에서 간간이 케어 방법을 설명해 주는 것 이외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 기회가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8일 부산 해운대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조현병 환자 가족 회복 프로그램 ‘가디언스북클럽’ 모습. 송국클럽하우스 제공 지난달 8일 부산 해운대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조현병 환자 가족 회복 프로그램 ‘가디언스북클럽’ 모습. 송국클럽하우스 제공

■커뮤니티 통한 ‘가족 재활’ 필요

전문가들은 조현병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에 대한 심리치료 등 재활 교육 프로그램도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가족 심리가 안정돼야 당사자를 위로하고 돌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사자가 직업, 주거 등 성공적으로 사회 복귀를 준비하는 데 가족 역할은 결정적이다.

부산의 조현병 가족 단체인 S클럽 한 간부는 “조현병에 대한 지식을 갖지 못한 가족들이 집에서 환자를 돌보다가 결국 자신도 우울증을 앓는 등 가족 전체가 불행한 길을 가는 경우가 많다”면서 “가족 모임을 통해 서로의 처지를 나누며 정서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나아가 재활교육으로 몸과 마음을 치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부산의 경우 정신재활시설과 연계해 가족 재활 교육을 하는 단체는 3곳뿐이다. 2014년 2곳이 만들어진 뒤 지난해 1곳이 추가됐다. 단체에 소속된 인원도 3곳 합쳐 32명이 전부다. 국가나 지자체 지원이 없는 탓에 정신재활시설에 다른 명목 예산을 전용해 쓰거나, 공모사업에 지원해 간간이 예산을 따내는 실정이다. 실제 지난해 가족 재활교육을 위해 집행된 예산은 3곳 합해 800만 원이며 이 중 700만 원은 외부공모 사업금, 100만 원은 다른 예산을 전용해 쓴 것이다.

정신재활시설 송국클럽하우스 한지연 과장은 “발병 초기 단계부터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병원→재활시설→가족단체로 이어지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면서 “관련 법에 가족에 대한 교육 지원 근거가 마련돼 있는 만큼, 가족협동조합 등 자생력이 있는 단체로 발전하도록 공적기관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정신질환자 가족이 질환자의 회복과 자립을 지원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관련 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가족 커뮤니티가 구성되면 ‘조현병=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사회적 인식 개선 활동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조현병 당사자 스스로 아무리 치료를 잘 받고, 사회에 복귀하더라도 사회적 시선은 여태껏 개선되지 않는 실정이다.

아미정신건강센터 박미옥 원장은 “부정적 인식 탓에 결혼적령기 아들의 발병 사실을 주위에 알리지 못하거나, 복지카드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가정이 많다”면서 “개인이나 가족의 노력에 더해 사회적 인식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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