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돼지국밥 로드] 1. 부산 대표 음식이 되기까지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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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시절 타 지역 국밥과 퓨전… 이야기 힘 업고 ‘최애 음식’으로

돼지국밥은 부림 사건 실화를 다룬 영화 ‘변호인’에서 또 다른 주연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 송강호가 돼지국밥을 먹는 장면. 돼지국밥은 부림 사건 실화를 다룬 영화 ‘변호인’에서 또 다른 주연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 송강호가 돼지국밥을 먹는 장면.

돼지국밥은 부산 대표 음식이다. 부산 안보다 밖에서 더 그렇다. 부산소비자연맹의 부산 상품 소비자 인식 조사에서 돼지국밥은 올해 부산 외 지역 사람들이 뽑은 부산 대표 상품 1위에 올랐다. 부산 사람들은 5년 연속 부산어묵을 1위로 뽑았다. 돼지국밥은 2위였다.


1940년대 밀양서 돼지국밥 팔아

향토음식 아닌 타지역과 혼합되며

6·25 당시 ‘부산돼지국밥’ 탄생

영화 ‘변호인’ 계기로 전국적 주목

식당 수 부산 692곳·경남 923곳

영남에 전국 돼지국밥 88% 몰려

부산만 ‘짜장면’보다 검색량 많아


■돈가스집의 倍, 짜장면보다 좋아해

부산 사람에게 돼지국밥은 특산품이라기에는 김치찌개나 백반처럼 너무 익숙한 음식이다. 올 9월 기준 소상공인진흥공단 상가업소정보에 따르면 부산에서 상호에 ‘돼지국밥’이 들어간 음식점은 692곳(한국외식업중앙회 부산시지회에 따르면 실제로 돼지국밥을 취급하는 식당은 742곳이다). 돈가스전문점(365곳), 초밥전문점(360곳)의 배, 스파게티전문점(54곳)의 13배 정도 된다.

돼지국밥이 부산에만 있는 건 아니다. 전국의 ‘돼지국밥’ 상호 식당은 2703곳, 이 중 88%가 부산을 포함한 영남 지역에 있다. 경남(923곳)이 가장 많고, 부산 다음으로는 대구(272곳), 경북(262곳), 울산(240곳) 순이다. 부산은 전체의 26%를 차지한다.

그래도 부산의 돼지국밥 사랑은 특별하다. 구글 트렌드는 2004년 이후 두 개 이상 검색어의 검색량 비율을 지역별로 제공한다. 대중적인 음식의 대명사인 짜장면과 돼지국밥을 비교해보면 어떨까. 전국 추이에서 돼지국밥은 단 한 번도 짜장면을 추월한 적이 없다. 부산은 예외다. 부산에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60 대 40의 비율로 돼지국밥을 짜장면보다 많이 검색했다.


■‘부산돼지국밥’의 탄생과 확산

‘부산돼지국밥’의 탄생 토양은 한국전쟁 이후 피란 시절 부산이다. 돼지국밥은 한국전쟁 이전에도 있었다. 밀양에는 1940년대부터 영업 중인 돼지국밥 식당들이 있다. 그러나 전쟁과 피란 수도 시절이라는 역사적 스토리텔링은 ‘부산돼지국밥’만이 갖고 있는 핵심 요소다.

평양 출신 고 최순복 씨는 1956년 범일동 옛 삼화고무 공장 앞에서 할매국밥을 시작했다. 서혜자(79) 씨는 1969년 국제시장에서 ‘순대국밥 하던 이북 할머니’를 어깨 너머로 보고 가게를 열었다. 지금은 폐업한 하동집(1952년 개업)도 창업주가 평양 출신 친구에게 순대를 배운 경우다. 1938년 밥집으로 시작한 영도소문난돼지국밥의 2대 사장 김현숙(85) 씨는 “이북 피란민 손님들이 많았다”고 기억한다.

이후 돼지국밥은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시장과 교통 요지를 거점으로 퍼져나갔다. 피란민이 생필품을 거래하던 부평깡통시장(양산집, 밀양집), 도매시장과 버스터미널이 있던 ‘조방 앞’(마산식당, 합천식당)의 노포들이 1960년대 들어섰다. 서면시장 국밥골목의 송정삼대국밥(1946년), 경주박가국밥(1954년)도 1960년대 시장 형성과 함께 자리를 잡았다.

■지자체의 명명과 언론의 호명

돼지국밥을 부산음식으로 처음 명명한 건 지자체다. 부산시는 2009년 돼지국밥을 포함한 향토음식 13종을 발표했다. 2002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1999년부터 순차적으로 연구 발굴 사업을 진행한 결과였다. 2004년 한국관광공사가 분류한 부산향토음식에는 돼지국밥은 없었다.

“부산의 돼지국밥은 부산에서 자생적으로 태어난 고유의 향토음식이라기보다 시대적, 사회적, 환경적 토대 위에서 탄생하고 각 지역 국밥과 혼합된 국밥으로 보인다.” 김상애 당시 신라대 교수는 시 연구용역 결과에서 ‘부산돼지국밥’을 이렇게 요약했다.

〈부산일보〉에서 ‘돼지국밥’은 1990년대만 해도 식당 개업이나 사건 기사에만 등장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주말 섹션을 중심으로 지역성을 강조한 돼지국밥 기사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주 5일제 확산과 ‘맛집’ 기사의 트렌드를 탔다. 조방앞과 서면시장 돼지국밥 골목, ‘줄서는 집’ 쌍둥이돼지국밥 등이 이 때 소개됐다.


■이야기에 이야기의 힘이 더해지면

전국적으로 ‘부산돼지국밥’의 인식을 굳힌 건 대중문화의 스토리텔링이다. 2006년 허영만의 요리 만화 〈식객〉 15권은 돼지국밥을 “부산 사람에게 향수 같은 음식”,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반항아 같은 맛”으로 소개했다. 2013년 12월 개봉한 영화 ‘변호인’은 특히 파급력이 컸다.고 노무현 대통령과 부산 부림 사건이라는 실화의 힘을 업고 부산돼지국밥도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음식칼럼니스트 박정배는 〈한식의 탄생〉에서 이 스토리텔링의 힘을 이렇게 설명했다. “돼지국밥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변화의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영화 속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나도 ‘변호인’의 주인공처럼 돼지국밥을 먹을 때마다 몸이 아니라 영혼이 성장할 가능성을 봤다.”

뉴스 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는 1990년 이후 주요 54개 언론사의 특정 검색어 관련 기사(정확도 상위 100건)에 함께 등장하는 키워드를 관계도로 보여준다. ‘돼지국밥’의 경우 5건 이상 기사에 나오는 키워드를 보면 부산(68건) 아래로 대통령(9건), 변호사(9건), 노무현(5건)이 연결된다.

해운대구 양산왕돼지국밥의 이태수(58) 사장은 “‘변호인’ 이후에 타지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고, 돼지국밥이 부산 대표 음식이라는 이미지도 굳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듬해 개봉한 또 다른 부산 무대 영화 ‘국제시장’도 힘을 보탰다. 부평깡통시장 양산집의 3대 사장 노치권(32) 씨가 이맘때 “시행착오 끝에 옛 맛을 복원하고 나서 밀려드는 관광객들 덕분에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고 기억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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