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일터, 당신이 만듭니다] 1. 위험에 내몰린 직업계고 학생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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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생은 ‘근로자 아닌 학생’ 신분, 노동법 사각지대 ‘신음’

공업계고 실습실 전경. 특성화·마이스터고 등 직업계고 학생들은 학내 실습실이나 산업체 현장에서 금속 용접, 절삭, 납땜 등 작업을 실습해 다양한 유해 물질에 노출되고 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제공 공업계고 실습실 전경. 특성화·마이스터고 등 직업계고 학생들은 학내 실습실이나 산업체 현장에서 금속 용접, 절삭, 납땜 등 작업을 실습해 다양한 유해 물질에 노출되고 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제공

227만 명. 부·울·경 지역에서 사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 수다. 조선·자동차 업종이 밀집한 부·울·경은 전국에서도 ‘위험의 외주화’가 손꼽히는 곳이다. 추락, 충돌, 끼임, 질식 등 4대 악성사고가 매년 끊이질 않는다. 〈부산일보〉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과 함께 ‘안전한 일터, 당신이 만듭니다’ 시리즈를 통해 지역 내 주요 산업별 사고와 재해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자 한다. 안전 비용을 하청업체에 전가하는 구조적 문제도 짚는다. 되풀이되는 안전사고, 현장 노동자의 비극을 막기 위한 대책을 살펴본다.

학교와 현장에서 실습 위주로 교육받는 특성화·마이스터고 학생들이 위험한 노동 환경에 내몰려 있다. 실습생은 현행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산업안전보건법 등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직업계고의 성과 대부분을 취업률로 평가하는 제도 또한 학생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최근 3년간 현장실습 안전사고 40건

학생 신분 탓 근로시간 준수·휴식 등

노동 최저기준 보장마저 ‘그림의 떡’

학교, 취업률 급급 안전 점검 소홀

실습생 산재보험 가입 등 대책 시급



■실습생은 ‘근로자’ 아닌 ‘학생’

2017년 11월 9일 제주시의 한 음료 제조회사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이 모(18) 군은 홀로 작업 중 제품 적재기 벨트에 끼어 중태에 빠져 끝내 숨졌다. 이처럼 현장실습에 참여한 학생의 안전사고는 끊이질 않는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특성화·마이스터고 학생들이 현장실습 중 당한 안전사고는 40건에 달한다. 현장실습생이 사망 사고도 2건 포함돼 있다.

특성화·마이스터고 포털 ‘하이파이브’에 따르면 27일 기준 부산 특성화·마이스터고에 재학 중인 학생은 1만 8000여 명. 부산 전체 고등학생 수인 8만 2132명의 22% 수준이다. 이들은 3학년이 되면 취업과 진로에 필요한 지식·기술을 배우기 위해 산업체가 실시하는 현장실습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이들은 ‘근로자’가 아닌 ‘학생’ 신분만 인정받는 탓에 각종 노동법 적용을 받지 못한다.

교육부는 2017년 8월 현장실습생의 인권과 안전을 보호할 목적으로 기존 ‘일·학습 병행’에서 ‘학습중심’ 현장실습제도로 수정했다. 2017년 1월 콜센터에서 현장실습하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가 발생하자 현장실습생의 인권과 안전을 보호할 목적으로 ‘근로자’ 신분을 제외한 ‘학생’ 신분만 인정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로 인해 현장실습생은 산업안전·보건 조치와 교육, 근로시간 준수와 휴식 등 노동 관련 법령을 적용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같은 이유로 산업체가 노동법을 지키고 있는지 감독해야 할 고용노동부는 현장실습 참여 기업에 대한 지도·감독조차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학교는 취업률 높이기 급급

특성화·마이스터고 등 직업계고가 취업률 올리기 급급해 현장실습 업체의 안전 점검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장실습 참가업체 수가 취업률과 연계된 만큼, 안전 요소 등을 까다롭게 검토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성화·마이스터고는 학교 정보공시 사이트 ‘학교알리미’에 매년 취업률을 공개하게 되어있다.학교 입장에서는 졸업생 취업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현장실습은 졸업생을 가장 효과적으로 취업에 연계시킬 수 있는 제도다. 현행 교육과정에 따르면 직업계고 학생은 3학년에 ‘산업체 채용약정형 현장실습’이 가능하다. 3학년 수업일수 1/3 범위(3개월)에서 연중 운영할 수 있다. 학교는 현장실습 참여 업체를 까다롭게 책정하기보다 최대한 많이 선정해야 취업률을 높이기 유리한 셈이다.

실제로 취업률은 교육부의 학교 ‘실적 평가’와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교육부는 1순위 지표 중 하나로 ‘4년간 평균 취업률’을 평가하고 있는데, 100점 만점 중 무려 20%가 취업률에 영향을 받는다.


■“실습생 산업재해보상보험 가입해야”

교육부는 2018년부터 현장실습 참여기업의 안전점검을 위해 ‘시·도교육청 현장실습협의체’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감사원은 ‘직업교육 추진 및 관리실태’ 보고서에서 “협의체 위원 대부분(98.6%)이 직업계고 담당교사 등으로만 구성돼 있어 전문성이 떨어진다”면서 “산업안전 전문가 참여를 확대하고, 현장실습 참여기업에 대한 안전점검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시교육청 단위에서 현장실습생을 위한 정책이 나오고 있다. 부산시교육청은 지난해 6월 전국 시·도교육청 중 처음으로 특성화고 현장실습 지원단 운영을 시작했다. 이 지원단은 현장실사단, 전담노무사 등으로 구성된다. 노무법인청록 하승혜 노무사는 “지원단은 직접 실습업체를 방문해 현황을 파악하고 근로조건 준수 여부 등을 꼼꼼히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실습 현장에서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해 실습생 보험가입 등의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하 노무사는 “학생이 현장실습에 참여할 경우 산업재해보상보험에 당연가입조치하고, 기업 내 실습생을 지도·관리할 수 있는 기업현장교사가 배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이 기획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과 부산일보가 공동 기획하였습니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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