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만 불러 조사하면 ‘증거 불충분’으로 덮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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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돈 성추행 사퇴 파장] 경찰 수사 난항 예상

오거돈 전 부산시장을 검찰에 고발한 시민단체 활빈단의 홍정식 대표가 고발인 조사를 받기 위해 29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경찰청에 방문, 경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김경현 기자view@

“수사는 해야겠고, 피해자와 가해자는 없고….”

부산경찰청이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 전담수사팀까지 꾸렸지만, 수사가 더디게 진행될 전망이다. 성폭력 사건의 핵심 증거인 피해자 진술 확보가 요원하기 때문이다.

피해자, 고소 여부 결정 못 해
고소 없으면 진술 확보 어려워
가해자 성추행 자백만 확보 땐
사법 처리 수위 낮아질 가능성

형법상 강간이나 성추행은 종전까지는 친고죄였다.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수사기관이 나서서 재판 회부가 가능했다. 그러나 친고죄가 사라지면서 수사기관도 난감한 입장이 됐다. 오 전 시장이 지난 23일 기자회견을 통해 성추행 사실을 시인하고 사퇴를 했다. 경찰은 오 전 시장의 성추행을 인지했지만 피해자가 함구하고 있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흔히 성범죄 수사는 피해자 진술, 신체 감정, 참고인 조사 등의 순서로 이뤄진다. 경찰청 수사 관계자는 “성범죄 수사의 첫 단계가 피해자 진술 확보인 이유는 일시와 장소, 행위, 피해 정도 등 범죄 사실을 특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도 이 단계에서 가장 정확한 사건 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 모든 증거와 정황을 모으고 마지막 절차로 가해자를 소환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재 피해자는 오 전 시장을 고소할지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소가 없으면 경찰이 당장 그의 진술을 확보할 수 없다. 또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 보호가 최우선이기 때문에 피해자 소환이 어려울 수도 있다. 오 전 시장 성추행 사건은 사실상 첫걸음부터 떼기 힘들어진 셈이다.

물론, 피해자가 고소를 포기하거나 진술을 거부하면 피의자 신분인 오 전 시장만 불러 조사할 수도 있다. 기자회견 당일 거제도 방향으로 가는 거가대교 휴게소에서 목격된 것을 마지막으로 오 전 시장은 종적을 감췄다. 경찰은 오 전 시장 측에 3차례 출석 통보를 한 뒤 불응할 경우 체포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기자회견을 통해 오 전 시장이 성추행에 대한 자백도 마쳤기 때문에 성추행 자체의 입증에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오 전 시장은 성추행 사실에 대해서만 자백했을 뿐 정황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피해자 진술이 없는 상태에서 오 전 시장이 수사 과정에서 본인의 성추행 사실을 번복할 경우 상황이 더 꼬인다. 유죄를 입증할 길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부산지역 한 변호사는 “최악의 경우에는 오 전 시장만을 불러서 수사해야 한다. 피해자 진술 없이도 기소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처벌 수위가 낮거나 기소 중지가 될 수 있다. 피해자의 진술 없이 강제추행의 불법성을 증명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부산’이 입회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공증 문건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역시도 법정에서는 가해자 자백 수준으로 취급될 뿐 결정적인 증거는 될 수 없다는 게 법조계의 판단이다. 한 법무법인 대표 변호사는 “피해자 고소나 진술이 없을 경우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없음’으로 수사가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짙다”고 설명했다.

수사 첫 단계부터 꼬인 경찰 입장에서 최악의 경우는 수사 표류다. 차라리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입장을 정하면 수사를 마무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피해자 진술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장 성추행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하면 수사를 마무리하지도, 이어가지도 못한 채 시간만 보내야 한다. 사건을 지켜본 일선 경찰서 여성·청소년보호계 관계자는 “사건의 일시, 장소도 정확하지 않으니 검찰 송치는커녕 사건보고서 작성도 안될 판”이라며 “피해자와 그 주변에서 성추행 책임을 물어 부산시장을 사퇴시키는 정치적 행위는 하고, 죄는 묻지 않은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며 혀를 내둘렀다.

권상국·김성현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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