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알려지지 않은 세상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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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알려지지 않은 공간을 사진 속에 담아낸 션팍 작가의 ‘Unknown Australia 05’. BMW 포토 스페이스 제공

‘Unknown USA 3 #7’. BMW 포토 스페이스 제공
사진가 션팍(Sean Park)은 미국, 영국, 아일랜드, 호주 등의 새벽 2시 밤거리를 찍는다. 그것도 대도시가 아닌 소외된 작은 도시를 찍는다.

션팍은 “일상의 시간이 아닌 비현실적인 시간을 사진 속에 가둬 두기를 원했다”고 말한다. 그의 사진전 ‘알려지지 않은 공간을 찾아서’가 부산 해운대구 중동 BMW 포토 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다.

션팍, 6월 27일까지 ‘사진전’
미국·영국 등 다니며 작품 활동
어둠 속 빛나는 삶의 흔적 남겨

한국에서 광고학과를 졸업한 션팍은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려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사진을 잘 찍어야 디자인에 힘이 더 실린다. 사진학 수업을 들으며 처음으로 암실에 들어갔다.” 그는 암실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게 너무 좋았다. 사진학과로 전과해 시카고 예술대 사진학과를 마친 뒤 2009년 프렛 인스티튜트 사진과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학업을 마치니 미국에서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유학생으로 와서 소비만 하다가 내쫓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사진 한 장이 션팍의 눈에 들어왔다. 낡은 모텔 방에 노인이 권총 한 자루를 들고 앉아 있는 윌리엄 이글스턴의 사진. “아버지도 지방 출장 때 저런 방에서 주무시면서 나를 유학 보내신 거겠지 생각했다.” 대도시에서 밀려 나온 사람들이 머무는 소도시를 카메라에 담는 언노운(Unknown) 시리즈가 시작된 계기다.

화려한 대도시와 달리 정지돼 버린 듯한 풍경, 불 꺼진 주택과 거리의 비현실적 모습을 담기 위해 사람의 움직임이 없는 시간대를 선택했다. 션팍은 디지털 미디엄 포맷 80mm 렌즈를 사용해 피사체에서 7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사진을 찍는다. “집들이 붙어 있고 도로 폭이 좁아서 영국에서 찍은 작품은 많이 없다. ‘언노운 코리아’가 나오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지만, 언젠가는 해보고 싶다.”

한밤에 찍은 것인데도 션팍의 사진 속 하늘은 푸른색이나 바이올렛 빛깔을 띤다. 그는 길가의 가로등 빛만을 이용해서 장노출로 밤 풍경을 담아낸다. 사진가의 고민이 어둠 속에 쓸쓸히 빛나는 삶의 흔적을 인화지 위에 남겼다.

새벽 2시에 촬영하다 보면 위험한 순간을 만날 때가 꽤 있다. “바로 도망칠 수 있게 차량을 옆에 세워 둔다. 사람이 나타나면 1분만 더 찍으면 되는 경우라도 작업을 접고 바로 차를 타고 이동한다.” 동시에 예상치 못한 예술적 구원의 빛을 만나기도 한다. “10차선 떨어진 곳에서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는데 집주인이 물을 마시러 나온 것인지 딱 한 번 불이 켜졌다.” 어두운 나무숲 사이 불이 켜진 집을 찍은 작품 ‘Unknown Australia 05’는 작가에게 특별한 기억을 선물했다.

사진가 션팍에게는 박성욱이라는 또 다른 삶이 있다. 상업 사진·스튜디오 렌털 사업을 하는 박성욱과 영화인 박성욱이다. 영화인 박성욱은 2013년 유로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장편 영화와 단편 영화를 찍었는데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 션팍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사진가로 활동하면서 사용한 이름이다.” 그는 사업으로 번 돈으로 사진을 찍고 영화를 만드는 자신의 삶이 다양한 선택지로 젊은이들에게 다가가기를 원했다.

두 명의 박성욱까지 더해 바쁜 삶을 살아가는 사진가 션팍에게는 꿈이 있다. “미국의 중고교 도서관에는 안셀 애덤스, 로버트 프랭크 같은 작가의 사진집이 있다. 그걸 보고 청소년들이 사진가의 꿈을 키운다. 나중에 중고교 도서관 책장에 ‘언노운’이라는 작업을 통해 시대를 보여 준 한 명의 작가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알려지지 않은 공간을 찾아서’=6월 27일까지 BMW 포토 스페이스. 051-792-1630.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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