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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을 찾아서 / 최원식

한국사에서 이순신만큼 빛나는 영웅이 있을까. <이순신을 찾아서>는 문학평론가 최원식이 이순신 이야기 변모를 통사적으로 살핀 책이다. 이 책의 중심은 1908년 단재 신채호의 ‘이순신’(<수군제일위인 이순신>)이다. 그것이 중세의 이순신을 근대로 호출한 첫 서사라는 것이다.

중세 이순신의 정점은 충무공의 글과 관련 기록을 망라·집대성한 정조 때의 <이순신 전서>다. 하지만 아무리 획기적이라 해도 그것은 ‘충성하는 신하’로서의 이순신, 즉 충(忠)의 테두리 안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단재는 그런 이순신을 근대적 영웅으로 최초로 호출했는데 임금보다는 나라와 인민, 민족을 위하는 이순신으로 재창안했다는 것이다. 근대적 이순신이 그렇게 탄생했다.

단재 ‘수군제일위인 이순신’ 시작으로
박태원·이광수·이은상 등의 서사 분석


하지만 근대적 이순신도 왜곡 과정이 우심했다. 저자가 보기에 노산 이은상은 ‘부용’(<성웅 이순신>)을 통해 개발독재 체제의 서사로 이순신을 왜곡시켰다. 노산은 이순신을 신앙과 주술로 휘감고 지독하게 우상화시켜 박정희에게 바쳤다. 1968년 박정희는 광화문에 이순신 동상을 세웠다. 박정희가 애독한 것이 춘원 이광수의 <이순신>이었다. 춘원의 <이순신>은 지독한 자기애의 소산이랄 수 있다. 그는 임시정부에서 이탈한 자신을 변호할 속셈을 감추고 <이순신>을 통해 위인을 헐뜯는 우리 민족의 단점을 마음껏 저주했다는 것이다. 이순신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은 춘원, 박정희 뜻을 받든 이은상뿐 아니라, 여러 진전이 있다고 하더라도 김훈(<칼의 노래>)에까지 드리워져 있는 경향이다. 저자가 보기에 이런 경향과 질적으로 다른 것이 단재의 이순신이다. 단재는 스스로를 이순신에 비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단재에게 동아시아 평화의 수호자로서의 이순신 면모를 부각하지 못한 흠은 있다고 한다.

‘이순신 서사’를 정리하면 이렇다. 홍명희 장편 <임꺽정>은 이순신을 한 모서리에서 발견하는 뜻밖의 기쁨을 주고, 춘원의 <이순신>은 춘원 작품 중에서 최악에 속하고, 구보 박태원의 <임진조국전쟁>은 이순신 서사의 결정판이라 하지만 구보의 소설치고는 평범하며, 노산의 <성웅 이순신>은 이순신에 대한 모욕에 가깝다. 김지하의 <구리 이순신>은 민중과 대화하는 낯선 이순신을 만들었고, 김탁환의 <불멸>은 이순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으며, 김훈의 <칼의 노래>는 춘원적이기는 하나 거기서 더 나아간 점은 있다. 이런 가운데 단재의 <수군제일위인 이순신>은 탁월한 바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책의 2부에는 단재의 <수군제일위인 이순신>과, 구보 박태원이 유려한 한국어로 번역한 <이충무공행록>이 실려 있다. 충무학(忠武學)의 결정적 두 문헌이라고 한다. 최원식 지음/돌베개/376쪽/2만 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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