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전태일과 노동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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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몸을 스스로 태운다는 결정은 마음이 어떤 수준에 이르렀을 때 내려질까. 평범한 시민으로선 차마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역사에는 꽤 많은 분신이 있었다. 그중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기점으로 기록될 분신의 주인공으로 많은 이가 전태일 열사를 꼽는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1970년 11월 13일 청년 전태일은 법전과 함께 스스로 몸을 불살랐다. 기계 부품처럼 동원돼 시들어 가는 누군가의 누이이자 딸이었을 이들의 참혹한 노동 현실을 그대로 내 아픔으로 여긴 아름다운 사람. 종교·철학적 의미에서 전태일은 인간이 곧 하늘(동학)이며,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불교)는 우리 고유의 정신세계를 인간의 그릇이라 할 몸을 스스로 태움으로써 더 강렬하게 웅변했다. 사회·정치적으로는 법을 준수하는 노동을 주장함으로써 권력과 자본에 포획된 척박한 한국 사회의 노동 환경을 개선해 나갈 소중한 씨앗을 뿌렸다. 내가 아닌 타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던진 의인이었고, 전태일 스스로가 한국 사회에서 노동과 노동자의 가치를 돌아보게 만드는 중요한 분기점이 된 것이다.

오는 11월 13일이면 전태일 열사 50주기다. 더구나 오늘은 그보다 80년 앞서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했던 제130주년 세계 노동절이다. 법정 공휴일 명칭이 여전히 ‘근로자의 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아직도 한국 사회 노동자들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최고 산재 사망률, 최장 노동시간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다음 달 10일이면 사방 1m도 안 되는 철탑 위에서 농성 1년째를 맞는 김용희 씨의 삼성 피해자 공동투쟁은 자본주의의 심장 뉴욕에서 발행되는 신문조차 주목했지만, 정작 국내에선 ‘동학주식운동’으로 주목받는 삼성전자 주식값의 100분의 1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속에 한국의 위상이 날로 높아진다. 보건과 방역을 넘어 한국이 새 기준(뉴노멀)을 제시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자본에 무한한 자유와 권한을 부여했던 신자유주의 민낯이 드러나는데, 언제까지 재벌과 대기업 꽁무니만 쫓을 것인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로 돌아가야 한다는 반성은 그대로 50년 전 전태일의 외침이다. 사람을 하늘처럼 대하고,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내 것으로 여기는 인간 존중 정신이다. 신자유주의를 우리식 ‘인본주의’로 개선해 나간 출발점, 2020년 5월이 훗날 이렇게 기억되면 좋겠다. 이호진 해양수산부장 j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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