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권의 핵인싸] 포스트 코로나,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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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원래 하던 대로 그대로 하는 것을 ‘관성’이라 한다. 흔히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의미로도 쓰이지만, 관성은 실상 우주 만물의 기본 성질이다. 즉, 아무 이유가 없으면 우주의 모든 것들은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한다. 원래 있던 대로의 상태를 벗어나 관성을 거스르는 것을 ‘변화’라 한다. 만물의 ‘변화’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 이 원인을 ‘힘(작용)’이라고 정의한다. 원인이 있어야만 관찰된 ‘변화’를 넘어 앞으로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 우리가 직접 관찰할 수 있는 ‘변화’를 보이지 않는 ‘힘’으로 설명하려는 설정이 바로 뉴턴의 유명한 역학 법칙이다.

자연 만물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일
코로나19로 새로운 시대 목전에 둬
진정 잃지 말아야 할 가치 고민해야

같은 작용(힘)에 대해서도 실제로 나타나는 변화의 정도는 물질에 따라 각각 다르다. 변화를 거부하며 버티는 물질 고유의 특성을 ‘질량 (mass)’이라고 한다. ‘질(質, Quality)’과 ‘양(量, Quantity)’의 조합인 이 우리말은 사실 크게 와전된 것이다. 이 개념이 우리말로 전달된 것은 일본을 통해서였는데, 정작 일본인들은 ‘물질의 고유한 양’을 뜻하는 ‘물질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중요한 글자를 떼어 내는 바람에 엉뚱한 의미가 되고 말았다. 질량이 없을 수는 있어도, 질량이 무한히 커서 변화가 불가능한 것은 없다. 어쨌든 자연 만물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며, 이는 끊임없이 서로 작용한다는 증거다. 상호작용은 사실상 존재의 근거이며, ‘변화’는 필연적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불과 몇 달 만에 정말로 많은 것이 변했다. 붐비던 상점들과 거리가 썰렁해지고, 사람이 무서워졌다. 비말의 전파를 막기 위해 유기적으로 연대해야 했던 우리는 모두 만남 자체가 실종된 현대 대도시의 한복판에서 역설적으로 혼자여야만 했다. 각종 미팅과 교육 현장에서는 고속 통신망을 활용한 영상 장치와 프로그램이 총동원됐다. 대중들의 공포, 불안, 공황, 마스크 대란과 넘쳐나는 환자 등 시행착오가 없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처음 경험하는 세계에서 새로운 가능성도 보았다.

굳이 비싼 경비를 쓰고 거기까지 가서 만나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스스로 만들어 보는 동영상의 각종 기술과, 강의 동영상은 편한 시간에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볼 수 있다는 장점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발견하게 된 가능성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음식점과 상점은 텅 비었지만, 온라인 주문과 배달은 폭주했으며, 불필요한 이동과 활동이 절제된 도시는 정중동(靜中動)의 새로움이 있었다. 불안과 안도감이 교차하는 모든 것의 등락을 훌륭하게 견뎌 낸 우리 사회는 이제 바야흐로 새로운 국면을 앞두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가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규모로 엄청나게 희생된 인명, 새로운 방식으로 소모되거나 남아도는 물자, 새롭게 뜨고 지는 직종들, 완전히 새로운 생활 방식, 지각 변동을 피할 수 없는 국제 정세,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우리의 국제적 위상, 이 모든 것을 견뎌 낸 전 국민에게 유례없이 지급된 재난지원금, 그렇게 되살리려고 하는 내수 경제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인공지능의 지식·기술·노동 대체에 이어 완전히 극단적인 개인주의로 재편될 불확실한 미래에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적응해야 할 것인가.

이 광범위한 변화의 시대를 감히 어떤 식으로든 재단하거나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과학자들은 ‘변화’의 문제를 풀기 위해 역설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을 상정한다. 우주에는 본질적으로 ‘변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모든 것들이 아무리 변화무쌍하다고 해도, 우주의 어느 것도 아무 이유 없이 생겨 나거나 없어질 수는 없다. 질량이 에너지로 바뀌는 것까지 포함한 에너지(질량)의 총량, 서로 주고받는 작용(반작용)의 총량, 전체 전하량은 시스템 내에서 절대로 변할 수 없다. 일련의 ‘보존 법칙’들이다. ‘보존량’을 파악하고 변하는 것을 관찰하면 필연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대체하지 못할 인간 대면 활동이 있을 것인가. 어쩌면 아무리 최신 전자병기와 무인전이 발달하더라도, 결국 깃발을 꽂는 것은 보병 부대의 몫이며, SNS와 인공 수정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사람 관계는 얼굴을 맞대고 음식을 나누며 눈을 맞춰야만 하는 게 아닐까. 결국,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사랑과 전쟁의 역사를 필연적으로 본다면, 수많은 비대면 활동의 비약적 증대가 예견되는 지금, 대면과 비대면 활동의 현명한 균형이 미래를 능동적으로 개척하는 열쇠가 아닌가 한다. 불안한 격동의 시절일수록, 무엇이 정말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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