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조선기자재산업] “6개월 시한부 선고, 일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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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주력 산업인 조선기자재산업이 위기다. 일감이 마르고 있다. “지금도 가시밭길이지만, 조만간 벼랑 끝을 만날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업계는 6개월 내에 벼랑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대로라면 벼랑 아래로 추락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조선기자재산업이 무너지면 부산 경제가 무너진다. 정부의 과감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부산 강서구 미음산업단지 A사. 선박용 열교환기를 주로 생산하는 이 업체의 올 상반기 수주 물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60억 원의 절반에 불과한 36억 원에 그칠 전망이다. A사 관계자는 “지난해 100억 원어치의 조선기자재 매출을 올렸지만, 올해는 30% 이상의 매출 감소를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려운 건 A사만이 아니다. 지난해 매출 530억 원을 올린 B사는 올 1분기 신규 수주량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70%나 줄었다. 올해 매출 역시 300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40%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강서구 미음산단 선박용품 업체
지난해 대비 수주 물량 반토막
조선업계 일감 가뭄 ‘직격탄’
대출 만기 도래 유동성 위기도

지난달 부산조선해양기자재공업협동조합은 매출액 100억 원 이상 회원사 중 28개 사를 대상으로 업계 어려움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절반인 14개 업체의 1분기 수주 물량이 전년 대비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11곳의 1분기 수주 물량은 전년 대비 10~30% 줄어들었고, 3곳은 무려 70%나 감소했다.

조선기자재업계의 위기는 모(母)산업인 조선업의 침체에서 비롯된다. 코로나19 전 세계 확산으로 인한 경기 침체, 물동량 감소 등으로 글로벌 신조선 수주량이 급감했다. 국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대형 고가 선박 중심의 수주 특성상 경기 침체에 따른 영향이 더 크기 때문이다. 기자재업계 물량의 절대적 판매처인 국내 조선 3사의 3월까지 수주량은 40만 CGT로, 작년 동기 190만 CGT에 비해 79%나 감소했다. 수주 잔량도 2021년 930만 CGT에 이어, 2022년에는 380만 CGT로 줄어든다.

문제는 조선업계의 일감 ‘가뭄’보다 기자재업계의 ‘가뭄’이 1년 먼저 도래한다는 점이다. 조선소의 신조선 수주 후 납기까지는 2년 정도 걸리지만, 기자재 발주와 납품은 그 중간쯤인 1년 후 이뤄지기 때문이다. 결국 올해 조선소 수주 물량이 마르면, 내년 기자재업계 일감이 마른다는 것이 기자재조합의 설명이다. 조선업에서 시작된 위기이지만, 조선업보다 먼저 직격탄을 맞는 셈이다.

게다가 상당수 조선기자재 업체들은 2018년 말 결정된 ‘조선해양기자재 제작에 필요한 금융특별대출’을 받았다. 대부분 지난해 초에 받았으니 이제 만기가 도래할 시기다. 일감 부족으로 들어오는 돈이 없으니 갚을 돈도 당연히 없다. 유동성 위기까지 겹친 셈이다. 앞선 기자재조합의 28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 10개 업체가 “현재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거나 “곧 유동성 위기를 겪을 것”이라고 답했다.

기자재조합 이병진 수출지원본부장은 “반년 정도가 지나면 최악의 상황이 찾아올 것”이라며 “남은 시간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조선기자재 산업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며 정부의 지원책 마련을 호소했다.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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