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워서 살아난 나무 지평선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위 사진부터 김덕용의 작품 ‘결-현’ ‘차경-홍매화’ 그리고 전시장 전경.
소울아트스페이스 제공
“이상하게도 부산에만 오면 신작들이 나오네요.” 나무를 캔버스로 쓰는 김덕용 작가가 30점이 넘는 신작을 들고 부산을 찾았다. 김덕용 개인전 ‘봄-빛과 결’이 부산 해운대구 우동 소울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다.

김 작가가 나무를 그림 재료로 쓰기 시작한 것은 대학원 재학 시절부터다. “동양화를 전공했는데 우리 고유의 미는 어디에 있을까를 연구했다. 전남 영암에 있는 고려 시대 절에서 퇴색된 단청을 보고 ‘이거다’ 생각했다.” 묵은 된장 같은 색에 매력을 느낀 그는 나무에 그림을 그렸다.

나무를 캔버스로 삼는 김덕용
소울아트스페이스에서 개인전
고목에 채색하고 상감법 응용
숯과 자개 섞어 그리움 표현
창에 그린 홍매화엔 삶의 향기

고목을 다듬어 그 위에 가구용 안료, 석채, 단청 재료를 혼합해 채색한다. 나무 위 이미지를 판 후 속을 채우고 표면을 갈아 내는 상감법을 응용하기도 했다. 자개를 붙이기도 한다.

작가의 손길을 따라 나무 위에 꽃이 피고, 아이가 웃고, 강아지가 뛰놀았다. 홍매화와 산수화를 그린 ‘차경’ 시리즈는 오래된 한옥 안에서 여러 개의 창으로 바깥 풍경을 보는 것 같다. “동양의 ‘이동 시점’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담아 보고 싶었다. 구례 화엄사에서 홍매화를 봤다. 같은 홍매화지만, 나의 시점이 있고 수도승의 시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본질은 하나지만, 각자의 창과 입장에 따라 다르게 본다는 말이다. 그래서 각각의 창에서 보이는 꽃의 색이 조금씩 다르다. 서로 보는 창이 다른데 자신의 창에 남을 가두려고 다투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각자의 창을 다 열어 두고 서로 어울리며 살아가도 괜찮다. 그게 삶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김 작가는 자신의 그림이 따뜻함을 주기를 바랐다. 따뜻함은 빛으로 이어지고 빛은 어둠 속에서 더 잘 드러난다. “작품 제작은 재료 연구에서 시작한다. 봄이 오려면 겨울의 휴식기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곁에 있는 나무를 무로 만들자고 생각했다.” 그는 나무를 태워 보기로 했다.

이번 전시에서 김 작가는 나무의 결이 품고 있는 시간까지 보여 주기 위해 나무의 아래쪽을 태우고 갈아냈다. 검게 탄 부분은 땅이 되고 그 위로 붉고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하늘과 땅의 연결선은 덜 태워서 동산 위에 나무가 반짝이는 느낌을 표현한다.

작가가 어머니를 생각하며 만든 작품 ‘자운영’은 반대로 하늘을 검게 태웠다. “어려운 시절 봄에 자운영 나물을 캐서 무쳐 먹었다. 자운영꽃에 질소 성분이 많아 비료 역할을 하기에 땅 주인들이 밭갈이를 빨리했다.” 검은 하늘은 그런 모습을 보고 애태웠을 어머니의 마음처럼 보인다.

전시장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심현의 공간’이 압도적 존재감을 드러낸다. 검은 나무 위에 숯가루와 자개를 섞어서 붙이고 옻칠을 한 작품 앞에서 김 작가는 ‘그리움’을 이야기했다. “고향 순천을 떠나 서울에 사는 나, 숲에서 살다 숯이 된 나무, 바다에서 온 자개까지 우리 셋 다 모두 고향을 그리워한다.” 그리움이라는 따뜻한 본성이 내재된 존재들의 만남은 깜깜한 밤하늘을 빛나게 한다.▶‘봄-빛과 결’=6월 23일까지 소울아트스페이스. 051-731-5878.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