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855. 내후년엔 몇 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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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입이 달렸으면 제대로 말을 한번 해보지그래? (Man의 멱살을 잡는다.) 응? 어서 아무 말이나 씨부려보란 말이야.”

어느 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에 나오는 구절인데, 표기법에 맞지 않는 말이 있다. 바로 ‘씨부려보란’인데, ‘씨부리다’라는 말은 사전에서 찾을 수 없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보자.

*씨불이다: 주책없이 함부로 실없는 말을 하다.(이 일을 자꾸 다른 사람들에게 씨불이면 재미 없어./너 지금 내 앞에서 뭐라고 씨불이는 거니?)

즉, ‘씨부려보란’은 ‘씨불여 보란’의 잘못이었던 것.

<‘털복숭이 남성들 환영합니다’ 몸에 난 수북한 털 세련되게 변신...>

어느 신문 제목인데, 사실 아무리 기다려도 저런 남성들은 오지 않을 것이다. 표준사전에서 검색을 하면 ‘“털복숭이”에 대한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라고 나온다. 대신, 이런 말이 올라 있다.

*털북숭이: 털이 많이 난 것. =북숭이.(나는 털북숭이 강아지를 좋아한다./아버지는 소 피가 흘러내리는 턱주가리를 털북숭이 팔로 닦았다.<김원일, 노을>)

살이 찌거나 털이 많아서 복스럽고 탐스러운 모양도 ‘복실복실’이 아니라 ‘북실북실’로 써야 한다.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면 그러께에는 몇 학년이었을까?’

답은…‘1학년’이다. ‘그러께’가 재작년, 그러니까 지지난해를 가리키기 때문. 3년 전은 그끄러께가 된다. 아래 물음에도 답해 보자.

‘올해 3학년이면 내후년에는 몇 학년이 될까?’

무슨, 이런 질문을 하나 싶겠지만, 답해 보시라. ‘내후년’은 후년의 다음 해, 내년의 다다음 해를 가리키기 때문에, 답은 ‘6학년’이다. 1년 뒤는 내년이고, 2년 뒤는 후년. 그러니 해를 세는 말 ‘3년 전-2년 전-1년 전-금년-1년 뒤-2년 뒤-3년 뒤’는 이렇게 정리하면 된다.

‘그끄러께-그러께-작년-올해-내년-후년-내후년.’

우리말엔 이처럼 비슷해서 헷갈리는 말이 꽤 있지만, 어떤 언어인들 크게 다르지는 않다. 결국 자기가 쓰는 말에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관심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고급 화자가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steak/bravo’ 대신 ‘stake/barvo’로 잘못 쓰면 대개 부끄러워하는 한국어 사용자들이, ‘결제’ 대신 ‘결재’라고 잘못 써도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카드 대금 결재일을 매월 5일에서 15일로 바꿨다’에서 ‘결재일’을 ‘결제일’로 써야 제대로 된 한국어 사용자가 될 수 있을 터.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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