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서해 EEZ 바닷모래 채취, 원칙 준수해 수산자원 보호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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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송 대형기선저인망수산업협동조합 조합장

지난 2016년 연근해어획량이 40년 만에 100t 이하로 급락한 이래 어업인들은 수산자원보호를 위해 정부의 강도 높은 어업규제를 수용하는 대신, 바닷모래·해상풍력 등 해양개발 행위에 대한 근본적 제도개선을 요구해 왔다.

특히 골재채취업자들의 마구잡이식 바닷모래 채취에 대해 한국수산산업총연합회를 중심으로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이에 해양수산부는 EEZ(배타적 경제수역) 내 바닷모래 채취를 국책용에 한정하고, 채취지역 복원·수산자원 회복 등 바닷모래 채취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 더 나아가 국무조정실의 골재 수급 안정화 대책에서 선진국 수준으로의 채취물량 감축(5%)과 관리체계 구축을 선언했다.

뒤이어 이루어진 제5차 남해 EEZ 골제채취단지 지정기간 연장(2018년 2월∼2020년 8월)을 위한 민관협의체는 6차례에 걸친 논의 끝에 △채취심도 제한(10m) △산란기 채취 중단(3개월) △채취강도 제한(1일 8척) 등 전 해역에 공통으로 적용될 표준적 협의이행조건을 마련했다.

특히 주목할 것은 민관협의체를 통한 협의 이행조건의 마련과 어업인 대표 전원의 동의를 의무화한 것이다. 어업인들 입장에선 ‘어업인 대표 전원 동의’라는 강력한 무기를 바탕으로 해양환경과 수산자원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협의이행조건을 요구할 수 있다. 이는 태안, 옹진 등 연안 바닷모래 채취 허가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제도적으로 정착됐다.

현재 우리나라 바닷모래 채취단지 4곳(남해 EEZ·서해 EEZ·태안·옹진) 중 마지막 남은 서해 EEZ 바닷모래 채취 신규단지 지정을 위한 절차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벌써 그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골재채취업자들은 사전 이해관계자 협의를 빌미로 비공식적 접촉을 통해 어업인 협의서를 요구했다. 업자들의 변칙적 행위로 민관협의체 운영의 근간을 무너뜨린 것이다. 또한 지난 4월 28일 개최된 민관협의체에서 합의된 협의이행조건도 남해 EEZ 등 타 해역의 협의이행조건에 미치지 못한다. △채취심도 12m △실질적 산란기가 아닌 1월 16일 ~ 4월 15일 채취중단 △1일 20척 채취선박 수 제한 등의 주요 협의내용은 골재업자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특히, 2017년 3월 해수부에서 발표한 국책용으로의 용도 제한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해수부가 민관협의체의 협의이행조건을 조정하지 않고 확정해 서해 EEZ 골재채취단지 신규지정을 위한 해역이용영향평가 협의의견을 국토교통부로 제출할 경우, 한국수산산업총연합회를 중심으로 한 수산업계의 반발은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우리나라 골재 수급상 바닷모래 채취는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다. 정부는 과거 수십 년간 반복되어 온 바닷모래 채취에 대한 수산업계의 반발과 골재파동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일시적으로 골재업계가 어려움에 처했다고 해서 국회, 정부 관계부처, 수산업계, 골재업계가 모처럼 머리를 맞대고 마련한 바닷모래 채취 제도 개선을 원점으로 되돌려서는 안 된다. 해수부는 해역이용영향평가 협의기관으로서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해 서해 EEZ 민관협의체의 협의 내용 중 불합리한 점을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나라 수산업계는 지금 바닷모래 채취, 해상풍력 등 환경파괴적 해양개발 행위와 해양쓰레기의 범람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어업인들은 정부정책에 부응해 자율적 휴어기 실시, 해양쓰레기 수거 등 자원회복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어려운 상황 속에도 수산업계에서 자구의 노력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정부도 더 이상 해양개발 행위에 대해 관용적 배려를 해서는 안 된다. 엄격히 관리하고 통제해야만 어업인의 신뢰와 지지를 받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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