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딱 이만큼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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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영화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스틸컷. 디오시네마 제공

영화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스틸컷.
디오시네마 제공
누구나 딱 이만큼의 거리가 좋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겐 나를 이해해주는 ‘거리’에 들어오기를 바라면서도, 나에게도 그리고 너에게도 너무 깊이 침식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를 보존하면서도 너를 이해하는 미묘하지만 적절한 이 거리, 이 감각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누구나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가 세대를 가리지 않고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인물들 사이에 놓인 ‘거리’를 영화의 주요한 무대로 삼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미야케 쇼의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서사로 말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인물들의 관계를 너무 멀게, 너무 가까이 그리고 과장되게 우울하게, 과잉되게 명랑으로 몰아가며 진행하는 영화다. 때로는 푸름과 회색빛의 색감으로도 말할 수 있을 테고, 혹은 청춘을 닮았다고 할 수 있는 영화. 질척이지 않고 쿨하게 청춘을 보내자. 절친에게 연인을 뺏겨도 ‘나’는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며 쿨하게 연인과 작별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금방 헤어진 연인에게 달려가 “아직 너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쿨하지 못한 끝맺음.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영화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홋카이도 배경 여름 청춘영화

인물 사이 ‘적절한 거리’ 탐구
사랑과 우정 둘러싼 삼각관계
평가 없이 거리 두기 흥미로워

밤새도록 술 마시고, 또 마시고 오늘은 집에 가지 않을래. 마치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마셔대던 그들. 한숨과 내일과 불안과 질척함이 없던 청춘이라는 민낯. 그래, 우리에게도 매일이 여름처럼 반짝이는 그런 날들이 있었지. ‘나’와 ‘시즈오’ 그리고 그들의 여자친구 ‘사치코’까지 세 남녀의 일상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는 영화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큰 사건이라고 할 것 없는 인물들이 함께 클럽을 가고, 술을 마시고, 당구를 치는 등 서로 어울리거나 각자 일상을 지내는 장면들을 느리게 비춘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을 살고 있지만, 관객 입장에서 그 청춘을 지켜보는 일은 유쾌하다. 청춘이라고 해서 방황하고 일탈하는 모습이 아니라 힘들면 힘든 대로,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거나, 되는 대로 시간 보내거나, 부모의 잔소리를 흘려듣고, 연애를 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방황하고 고민을 한다고 정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청춘에서 빠질 수 없는 건 역시 사랑과 우정이다. 서점에서 일하는 ‘나’와 사치코는 동료에서 연인이 되었으며, ‘나’와 시즈오는 룸메이트 사이다. ‘나’와 사치코가 연인이 되면서 세 사람이 곧잘 어울려 다니게 되면서, 시즈오와 사치코가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세 사람은 이 변화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흘러가도록 그저 놓아두며, 어쩔 땐 ‘나’는 모르는 척 두 사람에게 영화를 보러 가라고 권하기도 한다. 이때 감독은 삼각관계를 청춘의 치기 어린 방식이 아닌 적절한 거리 두기를 통해 보여 주고 있어 흥미롭다.

영화는 비운의 천재 작가로 알려진 사토 야스시의 초기 대표작인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소설의 배경은 1970년대 도쿄지만, 영화에서는 홋카이도로 옮겨오면서 보편적인 청춘의 모습을 담는 데 성공한다. 물론 미야케 쇼의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인다. 카메라는 인물들의 상황을 관조하듯 거리를 유지하며, 어느 땐 클로즈업을 통해 그들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눈치채도록 한다. 또 세 인물에 고르게 시선을 분배하면서 감정에 몰입하게 하고, 인물에 대한 어떠한 평가도 자제하게 하는 영리한 연출을 하고 있다.

누구보다 가까운 관계였던 세 인물의 거리가 멀어졌다. 사랑과 우정이 깨어졌다기보다 시간의 흐름이 그리 만들었다. 영화는 무언가를 굳이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영화 전반에 푸른빛이 깔려 있더니, 영화 엔딩에 이르러 여름의 강렬한 빛이 내리쬔다. 아마도 이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올 듯하다.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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