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9층에 살림 차린 황조롱이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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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진주 아파트서 둥지 주인 보살핌에 새끼 5마리 낳아

경남 진주시 명석면 한 아파트 9층 하철원 씨 집에 둥지를 튼 천연기념물 323-8호 황조롱이와 황조롱이가 낳은 새끼 5마리. 연합뉴스

“처음 왔을 땐 이 새들이 황조롱이인지 몰랐어요.”

천연기념물 제323-8호인 황조롱이 한 쌍이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 베란다에 둥지를 틀고 새끼까지 낳아 새 식구를 꾸렸다.

17일 진주시 명석면의 한 아파트 9층 베란다. 작은 종이 상자 안에 솜털이 채 빠지지 않은 아기 새 5마리가 옹기종기 모였다. 바로 옆 화분엔 제법 큰 덩치의 새 2마리가 앉았다. 매서운 눈빛과 날카로운 부리, 황갈색 몸에 흩어진 거뭇한 반점. 천연기념물 황조롱이다.

귀한 황조롱이 암수 두 마리가 이곳을 찾아온 건 지난 3월 말께다. 베란다 밖에 걸어 둔 화분에 둥지를 틀더니 열흘 뒤 첫 알을 낳기 시작해 모두 5개의 알을 낳았다. 집주인 하철원(60) 씨는 “처음 왔을 땐 이게 황조롱이인지, 천연기념물인지도 몰랐다”고 했다.

가족들이 모두 외국에 있어 홀로 생활하고 있던 하 씨는 황조롱이 부부의 방문이 신기하고 반가웠다. 둥지를 튼 화분이 5개의 알을 품기엔 작은 듯해 종이 박스를 구해 온 하 씨는 새끼를 위한 둥지를 손수 만들었다. 박스 바닥에 잘게 자른 신문지를 깔아 온기를 느끼게 해 줬고 배고픈 낌새를 보이면 먹이도 챙겼다. 황조롱이 부부와 하 씨의 정성스런 보살핌 속에 새끼들은 무럭무럭 자랐고 이달 초 모두 부화에 성공했다.

하 씨는 “4개가 부화한 후 어미가 나머지 알을 둥지 구석에 처박아 둬 ‘전부 부화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어느 날 마지막 황조롱이가 태어났다”고 했다.

알이 모두 부화한 후 암컷 황조롱이는 새끼 키우기에만 전념했다. 수컷 황조롱이는 바깥으로 나가 들쥐, 작은 새 등을 부지런히 물어 와 새끼들을 키웠다. 최근엔 새끼들 모두 건강해 털갈이를 시작하는 등 스스로 날 수 있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황조롱이 가족이 하 씨 집에 더 머무를 날은 열흘 남짓이다. 통상 황조롱이는 알을 낳은 지 두 달이면 둥지를 떠나기 때문이다. 하 씨는 “그동안 제법 정이 쌓였다. 아쉽지만 남은 기간 잘 머물다 자연으로 돌아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선규·김민진 기자 sunq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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