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성 살인 피의자, 랜덤채팅으로 1148명에 접근
입력 : 2020-05-17 19:44:45 수정 : 2020-05-18 10: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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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전북 완주군의 한 과수원에서 경찰이 부산 실종 20대 여성 시신을 발견하고 현장을 감식하고 있다. 연합뉴스 TV 제공 |
랜덤채팅으로 만난 부산 20대 여성 등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최근 1년간 랜덤채팅 등으로 1000여 명의 여성에게 접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이 피의자가 추가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또 익명성이 보장되는 랜덤채팅이 각종 강력 범죄에 빈번하게 악용되는 만큼 이와 관련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17일 전북지방경찰청 등에 따르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강간 등 살인)와 강도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최 모(31·남) 씨의 통화 내역과 랜덤 채팅앱 기록 등을 조사한 결과, 최근 1년간 여성 1148명과 접촉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중 상당수는 랜덤채팅 등으로 알게 된 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 중 1049명에 대해 신변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으며, 나머지 99명 여성의 신변에 대해서도 확인하고 있다. 또 삭제된 랜덤채팅 이용 기록 복원 작업도 벌이고 있으며, 작업 완료까지는 수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최 씨가 접근한 여성 규모는 더 늘어날 수 있으며, 추가 범행도 드러날 수 있는 상황이다.
경찰, 최근 1년간 기록 분석
추가 범행 가능성 수사 나서
현재까지 1049명 신변 확인
범죄 통로 악용 랜덤채팅 앱
87% 본인인증도 안 해 위험
최 씨는 지난달 18일 오후 부산에서 전북 전주로 온 A(29) 씨를 살해하는 등 여성 2명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A 씨는 지난달 중순 전주로 가 랜덤채팅으로 알게 된 최 씨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씨는 지난달 18일 자정 무렵 전주 한옥마을 인근 자신의 차량 안에서 A 씨를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전북 완주군 한 과수원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A 씨의 아버지는 지난달 29일 “딸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경찰에 실종신고했으나, 결국 지난 12일 A 씨는 숨진 채 발견됐다.
최 씨는 이에 앞서 지난달 14일 전주 완산구 한 원룸 근처에서 아내의 지인 B(34·여) 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도 받고 있다. B 씨를 살해한 최 씨는 B 씨의 통장에 있던 48만 원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하고, 금팔찌를 빼앗아 자신의 아내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A 씨가 살해당한 바로 다음 날인 지난달 19일 경찰은 B 씨를 살해한 혐의로 최 씨를 체포해 구속했다. 이후 조사에서 최 씨는 A 씨에 대한 범행과 관련해 “차에서 내려줬다”는 등 범행을 부인해 오다가, 최근에서야 살해 사실을 인정했다.
현재 경찰은 최 씨의 추가범행 가능성을 상당히 높게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수사 중”이라며 “이미 밝혀진 여성 2명 외에 또 다른 여성을 살해했거나, 전주 여성을 살해하기 전에 추가로 범행을 저질렀을 상황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금품이 목적이 아니라 가학적 성행위나 강간을 시도하다가 여성을 살해한 만큼, 최 씨가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유형의 범죄를 저질렀을 개연성이 높다고 설명하고 있다. B 씨를 살해하고 불과 4일 만에 A 씨를 살해한 것도 추가 범행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특히 최 씨가 랜덤채팅으로 다수의 여성과 접촉하고 그중 한 명을 살해한 사실이 경각심을 주고 있다. 익명성이 보장된 랜덤채팅이 ‘범행 사실이 적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과 범죄라는 잘못된 행동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유통되는 랜덤채팅은 총 346개로, 본인 인증이 없는 앱이 87%가량이다. 가입자를 회원으로 관리조차 하지 않는 앱도 47.1%다. 대부분 랜덤채팅은 이용자가 나이나 성별을 공개하지 않거나 속이는 채팅이 가능하다. 익명성 보장 탓에 마약이나 성매매 등 각종 범죄 거래에 악용되고, 최 씨처럼 상대를 유인한 뒤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가능한 구조이다.
실제로 지난해 8월엔 한 남성이 자신을 여성으로 속이며 “당하고 싶다. 만나서 상황극을 할 남성을 찾는다”는 취지의 글을 올린 뒤 연락해 온 또 다른 남성에게 엉뚱한 원룸 주소를 알려줘 이 원룸에 사는 여성이 범죄를 당하는 일도 있었다.
10대 여성들에 대한 가학적 성행위와 해당 영상을 유통한 ‘n번방’ 사건 역시 랜덤채팅이 매개체가 되었다. 또 2016~2018년 랜덤채팅을 통한 성매매 사범으로 모두 1만 1414명이 검거될 정도로, 랜덤채팅은 이미 각종 범죄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최 씨가)랜덤채팅 앱 기록도 남기지 않고 쓸 정도의 수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피해자를 딱 한 명으로 정하긴 어렵다”며 랜덤채팅을 통한 제3의 범행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우영·김백상 기자 k1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