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성 살인 피의자, 랜덤채팅으로 1148명에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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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전북 완주군의 한 과수원에서 경찰이 부산 실종 20대 여성 시신을 발견하고 현장을 감식하고 있다. 연합뉴스 TV 제공
랜덤채팅으로 만난 부산 20대 여성 등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최근 1년간 랜덤채팅 등으로 1000여 명의 여성에게 접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이 피의자가 추가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또 익명성이 보장되는 랜덤채팅이 각종 강력 범죄에 빈번하게 악용되는 만큼 이와 관련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17일 전북지방경찰청 등에 따르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강간 등 살인)와 강도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최 모(31·남) 씨의 통화 내역과 랜덤 채팅앱 기록 등을 조사한 결과, 최근 1년간 여성 1148명과 접촉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중 상당수는 랜덤채팅 등으로 알게 된 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 중 1049명에 대해 신변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으며, 나머지 99명 여성의 신변에 대해서도 확인하고 있다. 또 삭제된 랜덤채팅 이용 기록 복원 작업도 벌이고 있으며, 작업 완료까지는 수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최 씨가 접근한 여성 규모는 더 늘어날 수 있으며, 추가 범행도 드러날 수 있는 상황이다.

경찰, 최근 1년간 기록 분석
추가 범행 가능성 수사 나서
현재까지 1049명 신변 확인
범죄 통로 악용 랜덤채팅 앱
87% 본인인증도 안 해 위험

최 씨는 지난달 18일 오후 부산에서 전북 전주로 온 A(29) 씨를 살해하는 등 여성 2명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A 씨는 지난달 중순 전주로 가 랜덤채팅으로 알게 된 최 씨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씨는 지난달 18일 자정 무렵 전주 한옥마을 인근 자신의 차량 안에서 A 씨를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전북 완주군 한 과수원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A 씨의 아버지는 지난달 29일 “딸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경찰에 실종신고했으나, 결국 지난 12일 A 씨는 숨진 채 발견됐다.

최 씨는 이에 앞서 지난달 14일 전주 완산구 한 원룸 근처에서 아내의 지인 B(34·여) 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도 받고 있다. B 씨를 살해한 최 씨는 B 씨의 통장에 있던 48만 원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하고, 금팔찌를 빼앗아 자신의 아내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A 씨가 살해당한 바로 다음 날인 지난달 19일 경찰은 B 씨를 살해한 혐의로 최 씨를 체포해 구속했다. 이후 조사에서 최 씨는 A 씨에 대한 범행과 관련해 “차에서 내려줬다”는 등 범행을 부인해 오다가, 최근에서야 살해 사실을 인정했다.

현재 경찰은 최 씨의 추가범행 가능성을 상당히 높게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수사 중”이라며 “이미 밝혀진 여성 2명 외에 또 다른 여성을 살해했거나, 전주 여성을 살해하기 전에 추가로 범행을 저질렀을 상황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금품이 목적이 아니라 가학적 성행위나 강간을 시도하다가 여성을 살해한 만큼, 최 씨가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유형의 범죄를 저질렀을 개연성이 높다고 설명하고 있다. B 씨를 살해하고 불과 4일 만에 A 씨를 살해한 것도 추가 범행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특히 최 씨가 랜덤채팅으로 다수의 여성과 접촉하고 그중 한 명을 살해한 사실이 경각심을 주고 있다. 익명성이 보장된 랜덤채팅이 ‘범행 사실이 적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과 범죄라는 잘못된 행동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유통되는 랜덤채팅은 총 346개로, 본인 인증이 없는 앱이 87%가량이다. 가입자를 회원으로 관리조차 하지 않는 앱도 47.1%다. 대부분 랜덤채팅은 이용자가 나이나 성별을 공개하지 않거나 속이는 채팅이 가능하다. 익명성 보장 탓에 마약이나 성매매 등 각종 범죄 거래에 악용되고, 최 씨처럼 상대를 유인한 뒤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가능한 구조이다.

실제로 지난해 8월엔 한 남성이 자신을 여성으로 속이며 “당하고 싶다. 만나서 상황극을 할 남성을 찾는다”는 취지의 글을 올린 뒤 연락해 온 또 다른 남성에게 엉뚱한 원룸 주소를 알려줘 이 원룸에 사는 여성이 범죄를 당하는 일도 있었다.

10대 여성들에 대한 가학적 성행위와 해당 영상을 유통한 ‘n번방’ 사건 역시 랜덤채팅이 매개체가 되었다. 또 2016~2018년 랜덤채팅을 통한 성매매 사범으로 모두 1만 1414명이 검거될 정도로, 랜덤채팅은 이미 각종 범죄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최 씨가)랜덤채팅 앱 기록도 남기지 않고 쓸 정도의 수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피해자를 딱 한 명으로 정하긴 어렵다”며 랜덤채팅을 통한 제3의 범행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우영·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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