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얼굴을 숨긴 꽃이 내게 물었다 / 허준
지하철 승강장에 섰는데
어디선가 꽃향기가 날아왔다
그때 꽃향기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안녕하냐고
주위에 아무도 없었고
향수의 잔향도 아니었는데
얼굴을 숨긴 채 스스로를 퍼올리는 구나
그렇게 슬픔이 우리 곁에 머무르고
-허준 시집 중에서-
등산 갔다 내려오는데 어디선가 더덕 향이 풍겨왔다. 분명 근처에 튼실한 오래된 산 더덕이 숨어있는 것 같아 흥분했지만 줄기도 잎의 모양도 모르는 나는 향을 쫓아 헤매다가 결국 더덕을 찾지 못하고 내려왔다. 식물은 향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슬픔의 뿌리도 굵어지면 나 좀 찾아보라고 향을 풍기는가 보다. 사람들이 붐비는 지하철 승강장 같은 곳, 아니 붐벼야 마땅할 곳이 한적할 때 문득 울컥해질 때가 있다. 방치했던 나라는 존재를 소환하는 지점은 곧잘 젖어있다. 마음이 마음에게 ‘안녕하냐고’ 안부를 물을 때 슬픔은 위로를 담는다.
김종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