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 안일 행정·주말 의료 공백이 재소자 죽음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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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부산구치소에서 손발이 묶인 상태로 수감된 지 32시간 만에 숨진 30대 신입 재소자(부산일보 21일 자 2면 보도)가 주말에 의무관이 없어 진료와 약 처방을 받지 못했다. 또 부산구치소 측은 재소자가 공황장애 증세를 보이는데도 의무관을 부르는 등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손발을 묶은 채 감금해 재소자가 숨지는 엉터리 행정을 펼친 것으로 밝혀졌다. 주말 교정시설 의료 공백을 해소할 대책 마련과 함께 부산구치소의 교도 행정 개선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인다.

수감 32시간 만에 사망 재소자
헛소리 등 흥분상태 지속됐지만
의무관 출근 안 해 의료처치 전무
외부 병원 이송 등 적극조치 안 해
쇠창살에 갇힌 재소자 인권
의료 공백 해소 시스템 서둘러야

부산구치소는 지난 8일 금요일 밤 입소한 신입 재소자 A(37) 씨가 10일 일요일 아침 숨질 때까지 구치소에 의무관이 근무하지 않았다고 21일 밝혔다. 입소 당시 공황장애와 불면증이 있다고 밝힌 A 씨가 소란을 피우는 등 흥분한 상태를 지속했지만, 9일과 10일이 각각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인 탓에 의무관이 출근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A 씨에 대한 정확한 진료가 이뤄지지 않았고, 약 처방도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A 씨가 입소한 지난 8일 오후 11시 5분에는 의무관이 모두 퇴근한 상태였다. 평일 부산구치소에는 의무관 4명이 근무하고 있다.

부산구치소는 입소 이후 의무관으로부터 건강 진단을 받지 않은 신입 재소자 A 씨에게 규정상 약을 지급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공황장애와 불면증 진위를 파악하기 어려워 다른 조치를 취하기도 힘들었다는 것이다. A 씨는 지난 9일 토요일 오전 10시께부터 독방에서 소란을 피우고 “벽지 안에 구멍이 있으니 확인해야 한다”와 “파이프로 공구류를 만들어야 한다”는 등 이상한 말을 했지만, 구치소 측은 의무관을 불러 진단을 하거나 병원으로 보내는 대신 보호실에 감금했다. A 씨는 이 보호실에서 아무런 보호나 치료 없이 14시간 넘게 손발이 묶인 채 있다가 결국 숨지고 말았다.

부산구치소 측은 주말 의무관이 없어 빚어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현행 형집행법 제16조 2항에는 ‘신입자에 대해 지체 없이 건강진단을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시행령 제15조에는 ‘신입자 건강진단은 수용된 날부터 3일 이내에 해야 한다. 다만 휴무일이 연속되는 등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부산구치소 관계자는 “평일이었다면 A 씨에 대한 진료와 약 처방이 가능했을 수도 있다”며 “A 씨처럼 노역형을 받은 재소자들은 건강이 안 좋은 경우가 있는데 특히 금요일에 입소하는 재소자들은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형집행법 제39조에 따르면 정신질환이 있다고 의심되는 수용자는 정신과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이에 만약 A 씨가 평일에 증세를 보였더라면 의무관을 통해 적절한 조치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A 씨가 휴일에 증세를 보였더라도 외부 병원 등을 통해 당연히 검진을 받았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또 교정시설 주말 의료 사각지대가 드러나면서 공백을 해소할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경일 사회복지연대 사무국장은 “주말이라도 응급 상황에 놓인 재소자를 진단할 전문 인력이 근무하고 있어야 한다”며 “장시간 손발을 묶는 것보다 A 씨와 같은 경우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또 “구치소 측이 A 씨의 증세를 적극적으로 판단해 주말이었더라도 의무관을 불러 건강 검사를 실시하거나 외부 병원으로 이송해 검사를 했다면 이 같은 말도 안 되는 비극은 막을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한편 A 씨의 형은 토요일인 9일 동생 면회를 요청했다. A 씨 형은 당시 A 씨 건강 상태가 안 좋아 확인이 필요하다고 부산구치소 측에 말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면회가 불가능하니 12일에 다시 오라’는 답변을 들었다. A 씨 형은 “동생의 행동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내 말을 새겨듣지 않은 구치소가 결국 동생을 죽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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