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반려견… 누군가에게는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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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경 사회부 차장

코로나19로 모두 일상이 최소 조금씩은 망가졌을 테다. 가족 등 주변의 감염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 큰 피해를 본 상공인과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에게도 적잖은 여파가 있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바뀐 것도 하나 있다. 약속이 줄었다. 개인 시간이 제법 늘었다.

최근 많이 걷게 됐다. 시간이 남아서인지, 저질 체력이 바닥나 살아남으려는 발버둥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엔 틈만 나면 걸으려고 한다. 집을 조금만 벗어나면 불어오는 강바람이 시원하고, 늦봄 초여름의 ‘초록초록’한 자연에 생기가 도는 것 같다. 십수 년 살면서도 마땅히 동네 자랑할 게 없었는데, 새삼 이 동네에 대한 애정도 느낀다.

잡념이 사라지는 멍한 상태를 즐기는 것도 자꾸 걷게 되는 이유다. 한두 시간 흙길을 따라 걸으면 살짝 땀도 나면서 아무런 생각이 없어진다. 자잘한 고민을 다 털어버리는 그 시간이 좋다.

그런 무아지경의 순간이 확 깨질 때가 있다. 개똥이다. 지난 주말에도 인적이 조금 드문 산책길을 걷다 기겁을 했다. 산책로 한가운데 푸짐하게 싸놓은 개똥, 거기에 붙어 있는 큼지막한 똥파리 두 마리가 인기척에 날아오르면서 내게 다가오는 게 아닌가. 혹시나 나에게 붙을까 깜짝 놀라 소스라치듯이 뜀박질을 해야 했다.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곳곳이 지뢰밭인 오솔길은 걷기를 주저하게 된다. 요즘은 대부분 반려견 주인들이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며 반려견의 흔적을 지우지만 여전히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경우가 수시로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목줄을 하지 않은 개들이다. 나를 제외하곤 우리 가족 모두 개를 싫어하거나 혹은 무서워한다. 작은 강아지라도 다가오면 멀찌감치 피해서 걷는다. 특히나 목줄을 하지 않은 개들을 보면 초긴장 상태다. 개들도 자기를 무서워하는 걸 직감적으로 아는지, 등을 돌리며 피하는 사람에게 재빠르게 다가선다. 가족이 놀라자 나도 짜증이 나 “목줄 채우세요”라고 한마디 하니, “미안합니다”란 짧은 사과와 함께 그 개를 안아 들고는 “미안해 OO아, 많이 놀랐지?”라고 개를 보듬기에 바쁘다.

한번은 목줄 풀린 반려견의 놀이터가 된 줄도 모르고 주변을 가족과 산책하다 개 세 마리가 멀리서 한 번에 달려들어 가족이 혼비백산한 적도 있다. 계속 짖어대며 달려드는 통에 헛발질을 하며 막아내는 데도, 주인들은 한참 뒤에야 왔다. 그 뒤로 가족들은 그 산책길은 걷지 못한다. 반려견을 키우는 이들이야 반려견이 자녀와도 같은 사랑스러운 존재이겠지만, 모두가 반려견을 키우는 이들의 마음과 같지 않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이제 사람과 개가 공존하는 시대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차라리 광활한 강변에 반려견 전용 놀이터를 한두 곳씩 만들면 어떨까 생각도 든다. 걷다 보면 생각보다 강변은 넓고, 뭔가를 하려다 방치된 땅도 많이 있다. 이미 사실상 반려견 놀이터가 된 곳도 있다. 반려견들도 한번씩은 목줄을 풀고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싶을 테고, 주인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제법 넓은 부지에 펜스를 쳐 주변과 차단해, 그 안에선 목줄을 풀고 맘껏 뛰어다니게 하고, 다른 곳에선 목줄을 철저히 하고 다니게 하면 어떨까. 물론 개똥 규제도 철저히 하고. 공생하는 방안을 찾아보자. him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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