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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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업에 종사하는 한 후배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너무 힘들어서 깡 하나로 버틴다고 말한다. 악착같이 버티어 나가는 오기의 깡이다. 깡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했더니 동료 한 명은 긴급재난지원금 이야기냐고 묻는다. 시절이 시절인지라 속칭 ‘선불카드 현금화’를 떠올린 것이다. 그 깡이 아니라 요즘 유행하는 ‘깡’ 노래라고 했더니, “그게 왜?”냐고 되묻는다. 발매 3년이나 지난 뮤직비디오가, 그것도 하루에 수만 회씩 유튜브 조회 수를 올리는 내막이 궁금했다.

가수 비의 2017년 타이틀곡인 ‘깡’ 뮤직비디오 이야기다. 2일 현재 ‘깡’ 뮤직비디오 조회 수는 1200만 뷰를 넘겼다.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 멜론 TOP 100엔 3년 만에 재진입했다. ‘깡’ 유튜브 댓글 창에 달린 수많은 댓글을 즐기거나 스스로 달면서 매일 ‘깡’을 듣는다는 일종의 팬덤 현상마저 형성되고 있다. 남들처럼 ‘1일 1깡’(하루에 한 번은 ‘깡’ 뮤직비디오를 시청한다는 의미)’ 혹은 ‘식후 깡’(밥 먹고 ‘깡’을 본다는 뜻)을 하는 ‘깡팸(깡+패밀리의 준말)’은 아니지만, 뒤늦은 ‘깡’ 신드롬이 그저 신기하다.

‘깡’의 역주행을 이해하려면 ‘밈’과 ‘짤’, 그리고 댓글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밈(Meme)은 1976년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문화의 진화를 설명할 때 처음 등장했다. 지금은 특정 사진이나 영상이 온라인에서 적극적으로 소비되면서 하나의 유행이 되는 현상까지 아우른다. 짤은 인터넷 공간에서 떠도는 각종 자투리 이미지 파일을 통칭한다. 짤과 밈은 전통의 언론 즉, 레거시 미디어나 뉴미디어 콘텐츠와 적극적으로 융합하면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중이다. ‘깡’이 짤과 밈, 댓글로 재가공되고, 방송은 이를 다시 확대재생산 하는 구조다. 대중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졌다.

‘깡’에 대한 반응이 처음부터 호의적이었던 건 아니다. 조롱이 넘쳤다. 통계청 공식 계정이 ‘깡’에 남긴 논란의 댓글은 기름을 부었다. 그러다 반전의 기회가 생겼다. 스타 PD 김태호와 유재석이 다시 만난 MBC TV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비가 너무나 쿨한 모습으로 대중에게 어필했다. 자칫 상처가 될 수 있는 댓글에 대해서도 의연했다. 무엇보다 한동안 잊힌 가수가 아닌가 싶었는데, 비는 전성기 못지않은 춤 실력으로 완벽한 자기 관리 모습을 보여주었다. 깡으로 버틴, 비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깡’보다 깡의 역주행이 기분 좋은 이유다. 드디어 나도 깡팸이 되는 건가! 김은영 논설위원 key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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