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도시와 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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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대표

근래에 강서구청에서 발표한 한 공모전이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계획하는 ‘서부산 영상 미디어센터’의 자리가 옛 ‘대저수리조합 사무동’의 부지가 있는 자리에 건립된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로 개별 건물로도 보존의 가치가 있으며, 특히 지역의 문화유산으로 그 가치가 충분하다는 주장이 각계에서 일고 있어서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한다. 늘 부딪히는 일이지만 개발과 보존의 양날이 마주 서는 꽤 심각한 상황이다. 시민 모두는 잠시 고민해 보아야 한다.

나는 도시를 짐을 싣고 지나가는 수레에 빗대고 싶다. 당대를 사는 시민들을 짐으로 싣고 역사의 길로 차츰차츰 나아가는 수레, 고통과 역경과 희망을 동시에 이고 가는 묵묵한 수레. 지나친 비교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수레가 끌어야 하는 도시의 궤적은 꽤 무겁고 지난하다.


강서구, 옛 대저수리조합 철거 계획
서부산 영상미디어센터 건립 추진

개발과 보존의 양날 마주쳐 상황 심각
일제강점기 지어져 보존 주장도 제기

시민 모두가 잠시 고민해보아야
묘방과 해결책 찾도록 노력했으면


그 수레가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굴러가려면 두 바퀴의 크기가 같아야 한다. 어느 한 바퀴가 다른 하나에 비하여 작다면 수레는 회전하여 마침내 전복될 것임이 뻔하다. 단단하기 또한 같아야 한다. 한쪽이 부실하면 즉시에 주저앉게 된다. 잘 굴러가기 위하여 지녀야 할 조건들이다. 또 하나의 조건은 땅의 견실함이다. 물이 고여 질퍽하거나 모난 돌로 방해가 된다면 순조로운 진행이 어렵다.

개발과 보존이라는 양 바퀴의 균형에 의해서 무리 없이 진행되는 것이 좋은 도시의 표본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행정가는 어쩔 수 없이 마부의 입장이 되고, 두 바퀴를 연결할 축의 처지가 된다. 따라서 단체장이나 의회나 위원회의 입장은 도시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단초이다.

예컨대 중, 동, 서, 영도구 이른바 원도심의 의장단이 공동으로 산복도로 고도제한을 해제해 달라고 부산시에 청원한 것은 매우 이기적인 사례였다. 막상 그곳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보면 많은 시민의 생각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아도 아래의 도심은 이미 무질서한 고층 건물의 포화 상태인데, 거기에 산복도로 주변마저 우후죽순 개발된다면? 생각만 하여도 아찔하다.

이후로 유사한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지역 사랑을 넘어 개발이 타지역에 밀린다는 강박관념까지 가세한다. 하지만 도시란 선을 그어 구역을 나누고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서야 하는 그런 단순한 곳이 아니다. 그러한 관점은 그야말로 이기주의에 불과할 뿐이다. 뿐만이 아니라 그곳을 노리는 타지인들의 관여도 만만찮다. 이른바 자본이 목표인 그들에게 지역은 늘 투기의 대상이다. 그러한 이기심들이 지역성을 멸절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존의 문제는 행정가와 건축가들을 괴롭힌다. 개발을 전제로 한 직업군인 건축가들은 늘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갈등할 필연적 운명에 선다. 이번 공모전을 대하는 건축가들의 입장이 대체로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나와 내 동료들은 잠시 작업을 멈추고 고민해야 한다. 어디 건축가뿐이랴. 하지만 한 도시의 역사란 도시에 사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마땅히 생각하고 갈등해야 할 충분한 가치를 지닌 문제이다. 모두가 수레에 실린 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의 논쟁이 공평하게 해결되길 빈다. 양비론적인 시각이라 비난할지 모르겠지만 묘방과 해결책이 꼭 있으리라 생각한다. 문제가 발생하였다면 진행을 잠시 멈추고 두 바퀴의 상태를 다시 점검하고 균형을 맞출 일이다.

차제에 행정가들은 부디 시민의 주장 하나라도 길바닥에 버려진 하나의 돌멩이와 어느 한 곳에 팬 작은 웅덩이쯤으로 생각하지 말고, 다시 다지어 탄탄한 길로 만들기 바란다. 수레를 모는 마부의 입장은 그래서 힘들고 전문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일컬어 당국과 관료의 의무이고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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