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끝나니 안면 바꿔” 공공기관 2차 이전 약속 ‘질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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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균형발전] 2. 공공기관 이전

수도권 공공기관들의 2차 지방 이전 사업이 4·15 총선 이후에도 지지부진하자 부산·울산·경남 지역 여론이 격앙되고 있다. 부산의 이전 공공기관 예정부지 중 하나인 북항 1단계 재개발 지역을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상공에서 바라본 모습. 부산일보DB

“정부·여당이 도대체 뭘 믿고 지방 사람들을 이렇게 무시하나.”

“선거 끝났으니 안면 싹 바꿔도 된다는 말이냐.”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사업이 4·15 총선이 끝난 뒤에도 제대로 추진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부산·울산·경남(PK)을 비롯한 지역민들이 일제히 격앙됐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2018년 9월 정기국회 연설에서 “수도권에 있는 122개 공공기관의 지방 2차 이전을 추진하겠다”면서 ‘공공기관 이전 시즌2’를 처음 거론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올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공공기관들의 추가적인 이전 문제 등은 앞으로 총선을 거치면서 검토해 나가겠다”고 언급했다.

이해찬 대표 선거 전 “정책 확정”
선거 후엔 “차기 지도부가 결정”
정부 의지·진정성 의심스러워
추가 이전 계획 물거품될 가능성

혁신도시 용역에 ‘공공기관’ 빠져
국토부 결과 발표도 수차례 미뤄

이해찬 대표는 4·15 총선 직전(4월 6일) 부산을 방문해 “총선이 끝나는 대로 지역과 협의해서 많은 공공기관을 반드시 이전하도록 하는 정책을 확정짓겠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때 공공기관 이전 정책을 뚝심 있게 밀어붙여 성사시킨 국무총리가 바로 이해찬 대표였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들의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그 이후 여권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대통령과 여당의 약속이 과연 진정성이 있었느냐는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이해찬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서 임기 내에는 (공공기관 추가이전이)안 된다”면서 “21대 국회가 시작되면 당 지도부와 정부가 협의해서 판단하고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2년 전 처음으로 이야기를 꺼낸 당사자가 이제 와서 정책 결정을 후임 당 지도부로 넘긴다면, 논의 자체가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기다 국토교통부가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을 위해 진행해 왔던 ‘혁신도시 성과 평가 및 정책 지원 용역’ 결과 발표도 계속 미뤄지고 있다.

용역을 맡은 국토연구원은 당초 4월 말 용역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다가 코로나19사태와 연구수행 지연 등으로 결과발표를 5월 중순으로 연기했다. 그 이후 발표 시기가 6월 말로 재차 연기되자 추가 이전 계획 자체가 물거품이 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더군다나 국토부는 ‘혁신도시 시즌2’ 정책은 혁신도시 10곳이 안착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 ‘추가 이전’에 대해 수수방관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번 용역은 혁신도시 성과를 평가하고 산학연 클러스터 활성화, 입주기업 확대 등을 통해 정주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며 공공기관 추가 이전과 관련된 내용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추가 지방 이전은 정부 방침이 먼저 세워져야 한다”고 말해 이 문제가 정부·여당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이 관계자는 이전 공공기관을 유치하기 위한 지자체들의 경쟁에 대해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무 부처인 국토부의 이런 입장을 종합해 보면 그동안 지자체들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부터 마신 셈이다.

또 ‘새로 만들어지는 공공기관은 지방에 우선 설립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국가균형발전특별법 개정안(민주당 최인호 의원 대표발의)도 20대 국회가 끝나면서 자동폐기됐다.

부산의 한 야당 의원은 “민주당이 총선에서 압승하자 마음이 바뀐 것 아니냐”면서 “여당이 대선을 앞두고 수도권 ‘표심’을 고려해 공공기관 추가 이전 계획을 유보할까 걱정된다”고 했다.

참여정부가 2005년 6월부터 추진한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2019년 말 완료됐다. 이전 대상 공공기관 153곳이 모두 지방으로 터전을 옮겼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계기로 거점지역엔 10곳의 혁신도시가 조성됐고, 수도권에만 몰려 있던 좋은 일자리와 고급 인력이 지방에도 만들어졌다.

그런 만큼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에 대한 지자체들의 기대도 컸다. 수도권에 있는 이전 대상 공공기관은 122개이며 이들이 투자·출자한 회사도 279개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부산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가뜩이나 문재인 정부가 지방정책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공공기관 이전마저 무산되면 후폭풍이 심상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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