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돈 내고 나쁜 물 먹는 부산·경남… 정부는 팔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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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균형발전] 3. 물 복지·분배

부산 시민들은 많은 물이용부담금을 지불하면서도 오랫동안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마실 권리를 갖지 못해 왔다. 여름철 폭염으로 인해 녹조현상이 발생해 부산 시민의 식수원인 경남 양산시 물금읍 물금취수장 앞 낙동강이 녹색으로 변했다. 부산일보DB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갖춘 환경을 가질 권리. 헌법의 환경권에 따라 모든 국민은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마실 권리를 갖지만 부산과 동부경남의 시민은 오랫동안 이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최근에도 물금 취수장 인근 낙동강 원수에서 1.4-다이옥산이 검출되면서 물 복지와 분배를 위한 정부의 역할이 또다시 대두되고 있다.


부산 낙동강 표류수 의존율 91%
취수장, 산단 인접한 하류 위치
공업용수 수준 수질에 오염 위험

부산 물이용부담금 전국 최고
‘유역공동 활용’ 정부 역할 중요


■낙동강 먹는물 실태

2008년 3월, 경북 김천 화재사고의 여파로 낙동강 구미광역취수장 원수에서 페놀이 검출됐다. 이에 대구시는 5시간가량 취수를 중단했다. 정수할 수 있는 수준이고 취수 중단 기준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시민의 불안을 고려한 조치였다.

신상교 부산가톨릭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대구는 30% 정도를 댐에서 취수하고 있기 때문에 선제적인 취수 중단이 가능했다”면서 “낙동강 표류수 의존 비율이 90%를 넘는 부산에서 같은 사고가 일어난다면 어떻겠느냐”고 되물었다.

부산의 낙동강 표류수 의존 비율은 90.9%다. 동부경남에서도 창원 74.7%, 김해 62.7%, 양산 38.9% 등 의존율이 높다. 문제는 이 지역이 낙동강 하류에다 산단에 인접해 사고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낙동강 유역의 산업단지는 2002년 102곳에서 2018년 264곳으로 오히려 늘었다. 오염원도 많을 수밖에 없다. 수은, 페놀 같은 특정수질 유해물질이 포함된 폐수 방류량이 한강의 1.3배, 영산강의 9배에 달한다.

그렇다 보니 수질은 공업용수와 비교될 만큼 나쁘다. 낙동강 물금 취수장의 2019년 평균 BOD 농도(1.8㎎/L)는 대전, 광주, 서울 시민의 취수원인 금강(0.9), 영산강(0.8)이나 한강(1.1)과 비교하면 배에 달한다.



■물이용부담금은 어디로

그런데도 부산시민은 가장 많은 물이용부담금을 감당하고 있다. 물이용부담금은 낙동강을 깨끗하게 관리하기 위해 각종 규제와 수질개선사업 추진에 따른 비용을 분담하기 위한 제도다. 낙동강 수계에서는 광역지자체 5곳 등이 사용량 기준으로 t당 180원을 납부하는데, 제도가 도입된 2002년부터 납부된 3조 854억 원 가운데 무려 23.9%에 달하는 7387억 원이 부산시민들로부터 나왔다.

그러나 물이용부담금이 낙동강 수질개선을 위해 정확하게 투입되거나 그로 인한 개선 효과가 뚜렷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물이용부담금을 대부분 재원(97.3%)으로 하는 낙동강수계기금은 환경기초시설 설치비나 운영비 등에 사용되는데 2002년부터 2018년 기준 지원 현황을 보면 경북에 38.6%, 경남에 28.8%가 지원된다. 부산에 지원된 몫은 2.4%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동안 수질 개선 기준이 BOD 농도에만 맞춰 있다 보니 부산의 BOD 수치는 개선됐지만, 오히려 산업단지에서 배출되는 유해물질 등을 걸러내는 TOC(총유기탄소량) 수치는 증가하고 있다. 신성교 교수는 “물이용부담금 납부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수질개선을 위해 정확한 사업에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촉구하고 감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난망 구축 정부가 나서야

오염사고와 같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에 대비한 취수원 다변화와 낙동강 수질 개선은 정부가 낙동강 유역 지자체를 참여시켜 추진하고 있는 ‘낙동강 통합물관리 방안연구’ 용역의 주요 과제다. 특히 이번에는 부산시와 경남도를 포함해 먹는물 문제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반목한 지자체들이 함께 참여해 이번에는 갈등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어느 때보다도 높다.

그러나 이번 용역 결과로 해묵은 난제가 한 번에 풀릴 수는 없다. 취수원 다변화가 이루어지더라도 실제 부산시민이 나은 수질의 물을 먹기까지는 약 30년의 공사 시간이 필요하다. 그사이에 1.4-다이옥산이나 과불화화합물 같은 미량유해물질이 또 언제 어디에서 터져나올지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부산시는 인근 지자체와 협조체계를 마련하고, 사고 대응 매뉴얼을 재검토하는 동시에 낙동강 수질자동측정망 설치와 수질오염총량제 TOC 적용, 하폐수처리시설 방류기준 강화 등 대책에 정부가 나서 줄 것을 건의하고 있다.

먼저 물금과 매리 취수장 상·하류에 국가 수질자동측정망을 설치할 것을 촉구한다. 이렇게 되면 5분마다 취수장 인근 수질 상태를 확인해 대처할 수 있다. 특히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낙동강 하굿둑 개방과 연동해 낙동강 하류에도 자동측정망을 설치한다면 전세계적으로 희귀한 기수역 생태계 복원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을 거라고 부산시는 기대한다.

이준경 부산맑은물범시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은 “결국은 신뢰와 시스템의 문제”라면서 “물은 유역공동체가 함께 쓰는 공공재이자 헌법에 보장된 환경권의 영역인 만큼 도로나 철도처럼 원활한 순환과 국민 안전을 위해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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