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수도권 올인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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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경제부 산업팀장

수도권 2596만 명, 비수도권 2582만 명.

마침내 수도권이 더 커졌다.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추월했다. 이달 초 사상 처음으로 판세가 뒤집혔다.

수도권 인구 쏠림 추세가 앞으로 50년 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서울·인천·경기에 사는 인구 수가 나머지 지방 전체에서 생활하는 국민 수를 계속 앞선다는 뜻이다. 통계청 관측이다.

수도권 인구 비수도권 첫 추월
국토 11.8% 면적에 사람·돈 빨려 들어
‘지방 소멸’ 위기 속 행정수도 이전 논의
국가균형발전 통해 지방에 공평한 혜택을

대한민국 면적 가운데 수도권이 차지하는 비율은 11.8%에 불과하다. 이 공간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뒤엉켜 산다. 비좁게 살기를 원하든 아니든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경제적 구조 탓이다.

사람과 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상황인 만큼 ‘서울공화국’, ‘수도권공화국’이란 표현이 더는 빈말이 아니다. ‘수도권 일극화’라는 비판을 지방민의 헛된 엄살로 폄하할 수만은 없게 됐다.

50년 전인 1970년 수도권 인구는 913만 명이었다. 비수도권 인구는 2312만 명으로 훨씬 많았다. 서울 집중 현상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래도 더 많은 국민이 전국 곳곳에 골고루 흩어져 살았다. 반세기 만에 나라의 한 부분만 지나치게 비대해졌다. 다른 쪽은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몸집보다 커진 머리가 온몸을 짓누르는 비현실적 기형이 연상된다.

정부가 수도권만 키웠다. 서울·인천·경기에만 올인하는 나라다. 수도권 주민만 국민으로 여기는 것 같다. 지방민의 눈엔 그렇게 비친다는 말이다.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는 국비 예산으로 놓인다. 수도권 주요 신도시와 서울을 사통팔달로 잇는 급행철도 사업이다. GTX-A·B·C 3개 노선은 수도권 동서남북을 가로지른다. 지방과는 아무 상관없는, 수도권만을 위한 철도다.

부전-마산 복선전철 사업이 있다. 부산 부전역~경남 창원시 마산역 50.3km 구간을 복선전철화하는 사업이다. 수도권 GTX에 팔을 걷어붙인 정부는 부산·경남 철도 사업엔 쌀쌀맞기 그지없다. 국토교통부는 추가되는 사업비를 지방자치단체가 전액 부담하라고 매몰차게 몰아붙인다. 수도권과 지방 상황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철도 사업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수도권엔 나랏돈을 펑펑 퍼주면서 지역엔 야박하다. 온 나라 국민이 창출한 부에 물린 세금을 수도권에만 다시 쏟아붓는 듯하다. 지방민은 언제까지 수탈되는 신세에 머물러야 하는가.

행정수도 이전 논의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지방 소멸’ 우려가 한층 높아진 시점에 불붙은 논쟁이다.

더불어민주당 ‘행정수도 완성추진 태스크포스(TF)’는 청와대와 국회를 세종시로 이전하는 방안을 찾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수도권에 머물러 있는 공공기관 340여 곳 가운데 100여 곳을 지방으로 옮기는 ‘투 트랙’ 이전 논의도 함께 촉발됐다. 대한민국이 수도권공화국으로 치닫는 지금의 상황에서 무척 반가운 소식이다. 비정상적 집중화엔 인위적 조치가 불가피하다.

아직 지방민의 뇌리엔 “서울이 수도라는 점은 관습헌법”이라는 생소한 논리가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2004년 헌법재판소가 내놓은 관습헌법 논리를 순순히 받아들인 지방민은 많지 않았다.

서울이 우리의 오랜 수도라는 사실을 부인할 국민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조선왕조 이래 600여 년 간 오랜 관습에 의해 형성된 관행이므로 관습헌법으로 성립된 불문헌법에 해당된다”는 헌재의 결정엔 수많은 국민이 고개를 저었다. 수많은 풍자가 뒤따랐다.

이번엔 헌법 개정, 국민투표 등 다양한 방식이 거론된다. 헌재 결정으로 뒤집힌 전력이 있는 의제인 만큼 주도면밀한 대안 검토가 관건이다.

지방에도 국민이 있다. 모든 국민은 국가로부터 고른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국민이 나라에 지는 의무가 각각 다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고른 혜택은 지역의 고른 발전에서 비롯된다.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은 국가의 책무다. 행정수도 이전 논의는 국가균형발전 실현으로 나아가는 밑거름이다.

무차별적 흡인력으로 살찌운 수도권과 힘 없이 쪼그라든 비수도권 지역 국민이 공평하게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선 모처럼 다시 불붙은 논의가 결실 없는 정쟁에 그치도록 방관해선 곤란하다.

전국의 지방민이여 단결하자.
 

hoor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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