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믿을 재해 대응, 침수된 ‘안전도시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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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내린 폭우로 차량에 갇힌 3명이 목숨을 잃었던 부산 동구 초량 제1지하차도 입구에서 27일 오후 많은 비가 올 것으로 예상되자 경찰과 동구청 관계자들이 나와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김경현 기자 view@

“초량 지하차도 침수 피해자들이 어두운 차 안에서 119로 여러 번 전화를 했지만, 이들의 신고는 결국 접수되지 못했다.”

침수 참사에서 숨진 A 씨 유족은 아직도 분노와 억울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23일 오후 9시 30분께 초량 지하차도에 멈춘 차량 옆으로 물이 밀려들기 시작하자 A 씨는 맨 먼저 119에 전화를 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날 A 씨는 가족들에게 “119에 아무리 전화를 해도 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본격 구조가 시작된 것은 침수가 시작된 지 30분 이상 지나서였고, 결국 A 씨 등 3명은 숨진 채 발견됐다.

초량 지하차도 피해자들 분통
“물 밀려와도 119 연결 잘 안 돼”
침수 30분 지나서 구조 시작
온천천 등 곳곳 사고 재발 우려
文 “부산 사고 교훈, 피해 방지”

부산시와 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23일 오후 9시 30분 초량 제1지하차도는 물에 잠겼고, 이때부터 갇힌 시민 등이 여러 차례 119 신고를 했으나 첫 신고가 접수된 건 오후 10시 13분이었다. 계속 통화 중이어서 연결이 되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이날 오후 9시 52분 공동 대응을 요청하는 신고를 했지만, 이마저도 119에 접수되지 않았다. 신고 전화가 접수됐으면 본격 구조 시간을 30분 정도 앞당겨 희생을 줄일 수 있었다고 경찰 측은 파악했다. 119 측은 신고 접수와 별도로 이날 오후 9시 47분 위험을 감지한 소방대원 3명이 현장 부근에 도착했다고 27일 밝혔다.

위급 상황에서 119에 도움 요청마저 할 수 없었던 건 소방 당국의 인프라 부족 때문이다. 23일 집중 호우 당시 119 측은 운영 가능한 200여 회선과 67개 접수대를 동원했지만, 폭발적인 신고를 감당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오후 9시 30분부터 오후 10시 13분까지 119 신고는 3115건이나 됐다. 실제로 신고가 접수된 건 1075건에 불과하다. 이대로라면 비슷한 재난 상황에서 119 신고조차 못 하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지난 23일 발생한 부산 동구 초량 지하차도 침수 참사에서 ‘안전 도시’를 표방한 부산의 부끄러운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지자체의 대응은 미숙했고, 각 기관의 협력 체계는 빈약했다.

동구는 초량 제1지하차도가 호우경보가 발령되면 통제에 들어가야 하는 위험 3등급 지하차도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초량 제1지하차도 외에도 부산에는 호우주의보나 호우경보가 발령되면 통제해야 하는 지하차도가 모두 29개나 있지만, 통제가 제대로 진행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또 초량 제1지하차도에는 펌프 3대가 설치돼 있었지만, 용량이 분당 19.5t에 불과해 폭우에 무용지물이었다. 부산에 경사가 있는 25개 지하차도에 설치된 배수펌프의 용량이 분당 5t 이하인 곳도 상당수 있다.

특히 영도구 남항동 일대 등 자연재해지구 9곳은 주로 침수나 붕괴 등 집중호우나 돌풍에 따른 사고 위험이 높다. 동래구 온천천 인근 등 하수도 중점관리지역 3곳은 배수 시설이 부족해 언제든 침수될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부산시 관리 대상에서 벗어난 위험 지대도 상당수 있다는 것. 초량 제1지하차도는 부산시의 자연재해위험 개선지구나 하수도 중점관리지역 어느 곳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결국 또 다른 자연재해가 닥쳤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대형사고가 재발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장마철 집중호우로 안타깝게 목숨 잃은 분과 유가족분들께 깊은 위로 말씀을 전한다"며 "부산 지하차도 사고를 큰 교훈으로 삼고 인명피해가 더 발생하지 않도록 총력을 기울여 달라"고 지시했다.

이우영·이상배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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