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어디 일개 지자체가 국가권력에 맞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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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헌 사회부 행정팀장

“어디 일개 지자체가 국가권력에 맞서려고 하나.” 익명을 요구하는 김해신공항 부·울·경 검증단의 한 관계자가 국토부 관계자에게서 들은 말이다.

벌써 몇 개월이나 지난 얘기고, 여전히 검증이 진행 중인 상황이라 “그런 일이 있었다”는 정도로 기자에게 실토하며, 부·울·경 검증단 관계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국토부는 중앙 부처가 하는 일에 지자체가 딴지를 걸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국책 사업에, 중앙 정부에 대한 도전이자 저항이라고 못마땅해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한 마디 항변도 못 했느냐고 짐짓 힐난하는 기자에게 그는 “지자체가 중앙 부처에 ‘을’이지 않으냐. 너무 각을 세우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예상대로’의 답이 돌아왔다.

총리실·국토부 등 중앙 부처 ‘한통속’
김해신공항 검증 공정성 시비 불거져
편파 검증 속 안전·경제성 문제 노출
지역 민의 담은 국가균형발전이 중요

‘가재는 게 편’이라고 김해신공항 검증을 총괄하는 국무총리실도 사실 사정은 다르지 않다. 국토부와 부·울·경의 대립을 조정하고 중재하는 ‘심판’ 입장에서 검증위원회를 구성해 검증 절차에 들어간 총리실은 공정성·형평성을 잃은 지 오래라는 말이 나온다.

당초 검증하기로 합의했던 국토부의 2018년 기본계획안을 무시한 채, 국토부의 3차례나 걸친 수정안을 검증하라고 검증위에 압력을 행사하고, 친 부·울·경 검증위원들에게 여러 차례 압박을 가했다는 설이 공공연하게 떠돈다. 국토부의 자문위원이었던 인사 2명이 검증위의 소음·수요 분야 분과장을 맡고 있는 것도 총리실의 불공정성을 여실히 보여 주는 사례다.

국토부와 같은 ‘중앙 부처’이기 때문이다. 중앙 부처 간 한통속이라는 말이다. 끈끈하게 엮인 고시 선후배·동기, 학연으로 지자체에 대응하는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한다. 일개 지자체가 이들의 카르텔을 뚫고 들어가기는 애당초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현재 김해신공항 검증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치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같이 편파 검증 속에 진행되는 검증 과정에서도 김해신공항의 문제점은 속속 나온다.

검증위의 1차 시뮬레이션에서 기존 활주로의 ‘고어라운드’(착륙 실패로 재상승해 착륙을 다시 시도하는 것) 때 금정산과 충돌한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고, 부·울·경 검증단의 자체 검증에서 신설 활주로의 ‘고어라운드’ 때 승학산과 충돌한다는 검증 결과가 나왔다.

또 국방부와의 협의 실패로 ‘시계비행’(조종사가 직접 눈으로 지형을 보고 항공기를 조종하는 비행방식)이 존치하게 됨에 따라 돗대산 충돌 위험도 여전히 남아 있게 됐다. 즉 김해신공항은 기존 활주로, 신설 활주로 할 것 없이 인근 산과의 충돌 위험이 있어 안전상에 치명적인 결함을 드러냈다.

가덕신공항을 배제하고 김해신공항을 밀어붙인 주요 이유였던 경제성에서도 이제는 뒤바뀐 형국이 됐다. 당초 김해신공항 건설비용은 7조 원, 가덕신공항은 7조 5000억 원이었으나, 국토부의 최종 수정안대로라면 김해신공항 건설비용은 7조 6600억 원으로 가덕신공항보다 더 많이 들게 된다. 정부는 그동안 경제성을 이유로 줄곧 가덕신공항을 반대해 왔으니, 참으로 기가 막히는 아이러니다.

공항 건설의 가장 중요한 잣대인 안전과 경제성에서 더는 김해신공항을 주장할 근거가 사라지는 셈이다. 소음, 환경, 확장성에서도 김해신공항은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는 등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지경이다.

이 시점에서 문득 도대체 왜 신공항을 건설하느냐는 의문이 든다. 김해공항 확장이든 가덕신공항 건설이든 기존 공항보다는 규모가 큰 새로운 공항을 통해 지역민의 편의는 물론 지역 경제를 살리고 실질적인 국가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해서일 것이다. 어느 정권이든 국가균형발전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신공항 건설이라는 대계는 균형발전의 정점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울·경 지역의 민의를 담지 않은, 정부만의 일방적인 김해신공항 추진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민의가 담기지 않은 결과물을 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이라고 선심 쓰듯이 내놓는다고 할지라도 기꺼이 반길 시민은 얼마 되지 않는다. 정부의 정책적 목표를 상실한다는 의미다.

일개 지자체가 국가권력에 맞선다고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정확하고 공정한 검증과 지역 민의가 담긴 결과만이 국가정책을 효과적으로 펼치는 길이다. 중앙 부처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겠지만, 부·울·경 지역민에겐 생존과 미래가 걸린 문제다. 


corni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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