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다문화 감수성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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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1980년대를 살았던 사람은 ‘시커먼스’라는 TV 코미디 코너를 기억할 것이다. 개그맨 둘이 검게 칠한 얼굴에 우스꽝스러운 흑인 분장을 하고는 당시 생소했던 힙합 음악을 활용한 개그로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프로그램이다. ‘시커먼스’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인간을 피부색이나 인종에 따라 다르게 대접하고 평가하는 것을 인종주의라 하는데 ‘이 프로가 시청자의 눈과 귀를 인종주의로 마비시킨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왔지만 당시엔 별로 부각되지 못했다.

이후에도 무수한 광고와 코미디·예능 프로그램에 흑인 분장이 끊이지 않았다. 불과 3년 전, 한 개그우먼이 코미디 프로에 피부를 검게 칠하고 파와 배추로 우스꽝스럽게 분장하고 나와 흑인 비하 지적을 받은 바 있다. 그리고 얼마 전, 경기도 의정부고 학생들이 아프리카 가나의 장례 문화를 패러디해 얼굴을 검게 칠하고 관을 든 이른바 ‘관짝소년단’ 사진과 글을 올려 논란을 일으켰다.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가 인종차별적이라며 반박했다가 ‘어디서 가르치려 드냐’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네티즌의 역풍을 맞고 결국 사과하는 일이 벌어졌다.

피부를 검게 칠하는 ‘블랙 페이스’는 흑인 노예의 역사를 가진 미국에서 흑백 차별의 상징이었다. 지금 구미 국가에선 금기에 속한다. 관짝소년단의 경우, 의도는 없었다 해도 현지 풍습의 맥락이나 취지는 보이지 않고 단순한 재미를 위해 흑인 분장이 활용됐다는 점이 문제다. 차별의 시선이 모르는 사이 내면화한 게 아닌가 짐작된다. 차별과 편견, 나아가 혐오는 이제 재중동포와 동남아인 등에게로 확대되고 있다. ‘2018년 국민 다문화 수용성 조사’ 결과, 이주민을 차별적으로 대하는 태도가 3년 새 더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차별이냐 아니냐 나누는 기준은 행위자의 의도가 아니라 대상자의 감정이다. 그럼 당사자가 괜찮다고 한다면 차별이 아닌 걸까. 개인은 인종·계급·성별 같은 다양하고 복잡한 정체성을 갖는다. 차별은 사회적, 문화적 금기와 관련돼 있을 때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다. 인종차별 지적에 반성과 성찰 대신 반발과 공격이 이어지는 것은 그 사회의 다문화 감수성이 바닥임을 뜻한다. 우리는 일제강점기 일본인의 한국인 차별엔 공분하고 욱일기 문양 앞에서 분노하면서 정작 자신의 차별 행위엔 무감각하다. 어떤 행위들이 차별인지 늘 고민하고 우리 안의 편견을 고쳐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문화 감수성,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일, 우리 사회의 당면 과제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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