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영 칼럼] 할 수 있는 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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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김원웅 광복회장의 광복절 기념사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김 회장의 말은 나라를 빼앗은 일본 제국주의에 빌붙어 호의호식한 부역자들을 엄단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전체 맥락으로 볼 때 지극히 타당한 언사이다.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으로 구성된 단체의 수장이, 그것도 광복절에, 이런 내용을 밝히는 걸 가지고 누가 시비를 걸 것인가.

따라서 논란이 생기는 까닭을 알려면 각론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다. 그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친일파와 결탁했다고 비판했다. 또 작곡가가 친일 혐의가 있다는 이유로 애국가마저 탐탁지 않게 여겼다. 국립묘지에 묻힌 친일 행위자의 파묘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맥아더 장군도 이 화살을 피하지 못했다. 김 회장은 어제 경남도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초청 강연에서 “맥아더 장군(미군정)이 친일 청산 요구를 공개적으로 묵살했다”라며 “친일파에게 요직을 주고 이를 지적하는 사람은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갔다”라고 말했다.

너무 당연한 친일파 청산 주장이
온 나라를 논란으로 몰아넣는 건
제때 시행하지 못한 한계 때문

앞으로 국가가 계속 번성하려면
부의 편중과 지방 소멸에 가담한
현대판 부역자를 청산해야 가능



역사의 죄인 단죄는 제때 해야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바뀌어 이행이 어렵다. 이후 수십 년간 굳어진 체제를 깨뜨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칫 구성원들 간의 내분으로 이어질 개연성도 높다. 더욱이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일 주장에 대한 반론이 제기된다. 우리가 숙연한 마음으로 불렀던 애국가를 교체하는 건 더욱더 어려울지 모른다. 친일파 파묘도 다르지 않다. 그들 중 북한과의 전투에서 전공을 세운 이들이 적지 않다. 해방 후 국토가 분단되면서 발발한 한국전쟁은 포성을 멈췄지만, 이념 전쟁을 이 땅에 남겨 놓았다.

잘못된 과거사를 정리하고 극복하는 청산 작업의 길은 매우 험하다. 때로는 비틀거리기도 한다. 심지어 굴레에서 막 벗어났기에 죄과가 명료한 시기에도 처단은 만만치 않았다. 파리에서 독일군이 물러난 1944년을 보자. 이때부터 프랑스는 나치 독일과 비시 괴뢰 정부에 동조한 인사들을 철저하게 솎아낸다. 소설 ‘이방인’의 알베르 카뮈는 당시 청산론의 중심에 섰다. 카뮈는 ‘청산 작업에 실패한 나라는 미래가 없다’라는 의지를 내보였다.

그러나 모두가 그에게 마냥 동조한 건 아니었다. 소설가 프랑수아 모리악의 입장은 달랐다. 모리악은 카뮈처럼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국민 분열을 막기 위해 숙청 범위를 축소하길 바랐다. 지식인에게 ‘오류를 범할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카뮈-모리악 논쟁’은 그만큼 과거사를 바로 잡는 게 쉽지 않다는 교훈을 전한다. 프랑스는 이런 논의를 끊임없이 거치면서 차근차근 청산 작업을 진행해 갔다. 자그마치 수십만 명의 희생자를 낳은 내전을 겪었던 스페인은 또 다른 모습을 보였다. 내전 이후 좌·우파 간에 이른바 ‘망각 협정’을 맺었다. 옛 잘못을 용서하는 모양새였다. 지금도 ‘기억’을 외치며 청산을 외치는 목소리는 여전하나 평화를 되찾은 협정의 효과마저 부정하지는 못한다.

과거 청산은 이처럼 갈림길이 많다. 그 앞에서 올바른 방향을 잡으려 고전을 뒤적여 본다. 인류의 지혜가 담긴 동서양 고전들은 해석의 영역이란 생각을 갖게 한다. 현재의 시각으로 아득한 옛날 성현이 남긴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 고전도 다르지 않다. 그중 하나로 플라톤의 대화편 중 하나인 ‘향연’을 꼽을 만하다. 여기서 철학자, 비극 작가, 의사 등이 둘러앉아 ‘에로스’의 정체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한다. 백미는 소크라테스와 디오티마 간의 문답 장면이다. 두 사람은 육체적 잉태와 정신적 잉태를 논한다. 하나, 더 눈에 들어온 대목은 에로스가 아름다움과 추한 것 사이의 존재라는 부분이다. 어떤 대상을 사랑하는 데 있어 극단적인 태도는 오류를 낳기 마련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대한민국은 100년 남짓한 짧은 세월 동안 격동의 시간을 보냈다. 나라를 빼앗기고, 분단을 겪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렀다. 이 사이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수시로 바뀌고 원한은 켜켜이 쌓여만 갔다. 지식인들은 서로 으르렁거리기만 했다. 그 혼돈 속에서도 민족 공동체를 유지한 이들은 다름 아닌 민초였다. 식민과 분단, 전쟁 속에서 그저 살아남기 위해 이리저리 몰려다닐 수밖에 없던 처지였다. 그 고초를 겪고도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고난을 딛고 일어섰다. 우리나라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것도 그들 덕택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지금 각종 망국병으로 신음 중이다. 극심한 부와 기회의 편중,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지방 소멸이 그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마땅히 이 모순을 하루빨리 청산해야 한다. 안 그러면 분열 속에서도 이 나라를 지탱한 이들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때늦은 후회’라는 노래는 이 땅에서 그만 불려야 한다.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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