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철의 어바웃 시티] 자연 재난과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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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

여름이면 매년 되풀이되는 모습이 있다. 폭우가 쏟아지고,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한다. 뉴스 속보가 뜨고 이어 전문가 인터뷰가 뒤따른다. 곧 비가 그치고 폭염이 온다. 선선한 가을이 오면 언제 그랬나 싶게 모든 것을 잊어 버린다. 그리고 다음 해, 운이 좋으면 한 해를 건너뛰고 그다음 해 정확히 같은 모습이 반복된다.

재난심리학에 따르면 사람들은 같은 재난이 본인에겐 두 번 연속 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피해를 본 자신의 지역이 재난 이전처럼 복구되길 바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는 소망에 가깝다. 재난은 위험 지역에서 반복 발생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이런 사고와 행동은 재난관리 측면에서는 확실히 비합리적이다. 이 지점에서 정부의 정책 개입이 필요하다. 정부는 평상시엔 위험 지역을 계속 관리하면서 무분별한 개발 행위를 제어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유사시 구조·구급 등 비상 대응으로 위험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다.

여름이면 매년 반복되는 폭우 피해
도시개발 계획의 근본적 전환 요구

‘자연에 대응한다’는 인식 전환 필요
대신 ‘협력’과 ‘적응’의 전략 택해야

2000년 이후 도시계획 철학 변화
당국의 실천 의지·노력 뒤따라야

지난달 부산은 집중호우로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2014년 동래 우장춘로에 이어 이번엔 초량 제1지하차도에서 인명 피해가 났다. 안전 사각지대에 대한 관리를 등한시한 결과였다. 해당 지자체의 과실은 물론 위급 상황 때 관련 당국의 응급 대처가 미흡하지 않았는지 반성해 봐야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상시 도시계획과 연계한 정부의 재난관리 정책이다. 되짚어 보면 무분별한 부산의 고·저지대 개발은 집중호우 때 바로 재난 피해로 이어졌다. 기후변화로 시간당 강우량이 급증한 측면이 있지만, 지금의 재난은 기존 위험 지역의 도시개발로 인한 측면이 더 크다.

과학과 토목 기술의 발전에 기반한 근대 도시개발은 ‘인간은 자연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에 따라 도시 확장의 역사를 전개해 왔다. 이는 자연 재난 ‘대응’의 관점으로 이어졌다. 예전 같으면 개발하지 못했을 연안 저지대나 습지 등 홍수 범람원에도 도시개발이 진행됐다. 연안이나 강변에 제방을 쌓았으며, 시가지에는 배수관로, 저지대엔 펌프장을 설치했다.

부산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30년간 부산의 시가지는 2배 이상 늘었다. 도시 확장으로 인한 불투수 면적의 무한정한 증가는 집중 강우를 빠르게 저지대로 집중해 적은 강우량에도 저지대 침수 사태를 불렀다. 더욱이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폭우에는 도시 대부분 지역이 속수무책인 실정이다.

도시개발과 기후변화가 부산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국 대부분 도시는 물론 전 세계 도시의 공통된 문제다. 가장 극적인 사례가 미국 뉴올리언스시다. 15년 전쯤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제방으로 둘러싸인 저지대 도시인 이 지역을 강타했고, 저소득 흑인 주민 대부분의 삶에 치명적 영향을 미쳤다.

2000년대 이래 도시계획의 철학은 바뀌고 있다. 자연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협력’하고 ‘적응’하는 친환경적 도시계획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러한 철학에 기반해 하천, 습지 등을 고려한 생태적 도시 토지 이용 계획이 제시되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물순환 등 자연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는 친환경적 인프라 기법인 ‘저영향 개발(Low Impact Development, LID)’ 기법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 미시시피강 인근인 툴사시는 집중강우 때마다 매번 물에 잠기는 도시로 유명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자체 홍수 범람 지도를 만들고, 홍수 위험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을 이주시키고, 그 공간을 공원과 저류 공간으로 관리했다. 지속적인 위험 지역에 대한 토지 이용 규제로 현재 툴사시는 안전한 도시의 정책적 모범 도시로 여겨진다.

더 최근 사례인 미국 필라델피아시도 LID로 유명하다. 이곳도 집중강우로 인한 홍수 피해가 극심했다. 시 정부는 필라델피아 전역에 LID 적용 계획을 세웠다. 재정 확보를 위해 모든 시민에게 빗물세를 징수하는 등 급진적 정책도 제시했다. 세계의 친환경 도시들이 필라델피아시의 이 정책 실험을 주목하고 있다.

미래에는 현재 진행 중인 기후변화로 인해 기존 위험 지역의 재난 피해가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긴급대응식 재난 관리 측면만으로는 부족하다. 우수관로를 확장하고 펌프장을 설치하는 노력 또한 위험 지역에 개발된 도시의 모든 곳을 방어하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자연과의 ‘협력’을 통해 자연재해에 적응하는 철학적 전환이 필요하다. 이에 근거해 도시계획과 개발에 친환경성을 부여하고, 계획과 재생 단계에서 재난피해를 원천적으로 방지하는 정책적 방안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하루빨리 부산에도 기존 도시계획에 환경과 재난관리를 통합한 도시철학과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이해관계자의 지혜와 노력이 접목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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