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PD수첩’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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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MBC TV 시사 프로그램 ‘PD수첩’이 방영되기 시작한 지 올해로 30년이 되었다. 지금까지 PD수첩 방영 횟수는 1254회에 달한다. 프로듀서가 제작하는 이 탐사보도 프로그램은 그동안 한국 정치와 뉴스 현장의 굴곡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살아 있는 한국 현대사나 마찬가지다.

PD수첩은 시의적인 사건의 이면을 추적하거나 심층 취재한다. 황우석 배아줄기세포 사건, 광우병 쇠고기 파동, 4대강 사업 의혹, 총리실 민간인 사찰 등 굵직굵직한 사안 보도로 그때그때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정치권의 외압이나 관련 집단의 항의로 방송이 파행을 겪은 일도 종종 있었다. 역설적으로 PD수첩이 겪은 굴곡은 프로듀서가 만드는 시사 프로라는 생소한 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하나의 저널리즘 양식으로서 PD수첩은 적지 않은 문제점도 드러냈다.

올해 방영 30주년, 1254회 방송돼
‘PD저널리즘’ 바탕 시사 프로 정착
이슈 발굴 기여, 공정성 시비도 낳아
신문, 심층성 강화한 탐사보도 기대

첫째는 소재 문제다. 원래 탐사보도에는 크게 두 가지 부류가 있다. 하나는 주로 비리나 음모 등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 폭로하는 기사고, 다른 하나는 장기적인 추세를 분석해 중요한 사회적 문제를 발굴해 이슈화하는 방식이다. 물론 앞엣것이 훨씬 흥미롭고 수용자의 시선을 끌기가 쉽지만, 반드시 사회적으로 중요한 발견을 했다고 할 수는 없다. 사회적 이슈를 발굴하는 탐사보도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투입되면서도 인기는 없다. PD수첩은 폭로 유형을 주로 다뤘다.

취재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의 문제점도 지적하고 싶다. PD수첩 역시 시사 프로로서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을 따라야 하지만, 실제로는 일반 기자들이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관행도 종종 보여준다. 메시지 전달에서 제작자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강하게 드러나고, 그 시각을 뒷받침하는 영상 위주의 편집이 두드러진다. 카메라 기법에서도 손에 든 카메라가 촬영자 눈높이에서 흔들리면서 현장이나 사물에 다가가는 느낌을 주는 ‘핸드헬드’ 기법이 너무 자주 사용된다. 이는 전통적인 뉴스보다는 드라마나 일반 다큐멘터리의 서사 구조나 표현 방식에 더 가깝다.

개인적으로 해외 다큐멘터리도 많이 접해 봤지만, PD수첩에서는 이처럼 ‘주관적’ 구성의 정도가 과도한 듯하다. 시청자의 감정적 몰입도를 높이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특히 사안의 다양한 측면을 균형 있게 다뤄야 할 저널리즘 장르로서는 공정성 시비에 말려들기 쉽다. 과거의 몇몇 방영분에서 논란이 된 편집윤리 문제도 따지고 보면 일회성 실수라기보다는 이처럼 과잉 몰입 중심의 영상 관행에서 비롯된 부작용이다.

하지만 저널리즘 전반에 미친 파급효과 측면에서 보면 PD수첩의 기여는 말할 수 없이 크다. 이 프로그램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를 발굴해서 부각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아마 이 프로그램 덕분에 탐사보도를 텔레비전과 함께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탐사보도는 원래 신문에서 시작된 보도 장르다. 더구나 지금은 신문도 심층성을 더 강화하는 추세인데, 왜 국내 신문에서는 탐사보도가 성공하지 못했을까?

무엇보다 사람이라는 요인이 결정적이다. 텔레비전에서도 일반 뉴스는 화면이 가미되고 영상 중심의 뉴스 가치로 진화했지만, 기본적으로 신문 뉴스와 유사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PD수첩은 프로듀서라는 새로운 직업 종사자가 만든 것이어서, 기자가 제작한 일반 시사 보도와 차별화된 색깔을 접목할 수 있었다. 이는 뚜렷한 장단점을 드러낸다.

어떤 분야에 오래 종사하면 과거의 관행이나 감각이 제2의 천성처럼 굳어진다. 신문기자에게 체화된 뉴스 관행은 그동안 시간에 쫓기는 취재 현장에서 유용했지만, 변화가 필요한 시기에는 변신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이 되기 쉽다. 신문은 요즘 주목도 고갈로 고전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뉴스든 비뉴스든, 기자나 PD 또는 일반인이 작성한 뉴스든 신경쓰지 않는다. 수많은 기자가 ‘단독보도’를 무수하게 발굴해도, 후속 보도로 이어지고 독자의 주목을 끄는 것은 극소수다. 이제는 신문도 백화점식 취재에 매달릴 게 아니라 의미 있는 소수의 기사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하지만 신문기자는 하루 단위로 뉴스에 매달리고 개인 단위로 일하는 데 익숙하다. 신문사 조직이나 작업방식 역시 시간과 협업이 필요한 장기 취재에는 맞지 않다. 국내 신문에서 탐사보도가 자리 잡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다. 신문은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매체이지만, 이러한 시간의 무게가 지금은 새로운 환경에 필요한 변신을 제약하고 있다. 혁신은 새로운 요소를 추가하는 것보다 제도든 인식이든 낡은 것을 버리는 데서 시작된다. 신문의 오랜 저널리즘의 경험에 심층성을 잘 접목한 새로운 탐사보도 기사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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