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공백 빚고서야 ‘대화’ 명분 찾는 정부·의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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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2차 대유행 비상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무기한 파업에 들어간 가운데 23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병원에서 전공의들이 의대 정원 확대 재논의 등을 촉구하며 의사 가운을 벗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가 심각한 속도로 확산되면서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침을 두고 팽팽하게 맞서던 정부와 의료계가 강경 모드를 잠시 유보할 명분을 찾고 있다. 의료계의 파업이 지속되면 코로나19 방역에 공백이 발생할 수 있고, 이 경우 정부나 의료계 모두 비난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코로나19 재확산이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라 국무총리와 더불어민주당, 미래통합당에 긴급 간담회 개최를 제안하는 공문을 발송했다”고 23일 밝혔다. 코로나19 유행이 전국으로 확산 중인 만큼 의료계와 정부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보고 대화를 제안했다는 게 의협의 설명이다.

의협 ‘의·정 협력’ 간담회 제안
정부 “의대 정원 확대 조치 보류”

부산 전공의 87% 집단행동 참여
인력 부족 검체 채취 차질 우려

김대하 의협 대변인은 “코로나19 전국적 확대라는 엄중한 위기 사태를 맞아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만남을 제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표면적으론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등 보건의료 정책에 대해 의료계와 정치권이 합리적 해결방안을 모색하자는 게 대화 제안의 이유다. 하지만 예상보다 코로나19 유행이 심각해지면서 의협이 의료계 파업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악화되는 걸 감지하고, 강경 모드를 누그러뜨리는 명분을 찾기 위한 조치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앞서 지난 22일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한 행정 조처를 먼저 유보시켰다. 이날 보건복지부는 “이번 달까지 교육부에 통보해야 하는 의대 정원 규모를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보류한다”고 밝혔다. 당초 복지부는 8월 초까지 2022학년도 의대 총 정원을 확정해 교육부에 통보할 계획이었으나, 이를 보류한 것이다. 정원 통보가 이뤄지지 않으면 이후 관련 절차는 진행되지 않는다. 곧이어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일촉즉발의 코로나19 대규모 확산을 막기 위해 의료계와 정부가 더욱 협력할 때”라며 “의료인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진료 현장을 지켜 달라”고 담화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올해 12월까지 정원 배정을 위한 기본 계획을 수립하기까지는 4개월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번 정원 규모 통보 유보는 일시적인 조처일 가능성이 높다. 의협도 복지부의 정원 규모 통보 유보와 관련해 “신뢰할 수 없는 정치적 수사”라는 입장을 내놓고, 집단행동을 강행했다.

이에 따라 지난 21일 인턴과 4년 차 레지던트, 22일 3년 차 레지던트에 이어 23일 1년 차와 2년 차 레지던트까지 파업에 참여하면서 전국 수련병원의 전체 전공의가 단체행동을 벌였다. 전공의 참여율은 80%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의 경우 지역 내 21개 수련의 전문병원에서 근무하는 전공의 총 913명 중 789명(87%)이 23일 파업에 참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부산대학교 병원, 고신대학교복음병원, 대동병원, 해운대백병원 등에선 파업 참여 전공의들이 성명서를 낭독한 뒤 가운을 벗고 단체 행동에 들어가기도 했다.

대규모 전공의 파업이 발생하자 당장 코로나19 방역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됐다. 당장 23일 부산을 포함해 전국의 병원 내 코로나19 선별진료소 인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부산시 관계자는 “선별진료소 검체 채취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이며 코로나19 검사는 각 구·군 보건소를 이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발표된 의협의 대화 제안이 받아들여지고 의료계의 파업 철회나 유보 등 양측의 강경 모드를 완화할 수 있는 조처가 이뤄지지 않으면, 의료 공백에 따른 시민 불편과 코로나19 방역 차질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의협이 예고한 26일 총파업엔 전공의와 전임의, 고용 의사인 봉직의 등 의사 전 직역이 참여하기로 해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

김백상 기자 k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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