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기억 / 조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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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잉여물을 처리하기 위해

내가 애용하는 변기



몰래, 지저분한, 더러운, 당혹스러운, 코를 찌르는

따위를

처리하는 변기



이 잉여물의 잉여물이 알을 스는 밤

내 몸의 구멍이란 구멍마다

벌레가 우글거리고

구멍이란 구멍이

사각사각

넓혀질 때



손잡이를 힘껏 누르면

몰래, 지저분한, 더러운, 당혹스러운, 코를 찌르는

따위들이 탄성을 지르며 사라지고



수면 위 난처하게 떠 있는

나,

이 잉여물의 총체성

-조말선 시집 <재스민 향기는 어두운 두 개의 콧구멍을 지나서 탄생했다> 중에서-


기억과 망각 중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동전의 양면 같은 기억과 망각. 꼭 쥐고 있어도 나도 모르게 뒤집혀 붙들고 싶은 것이 달아나기도 하고 잊어버렸으면 하던 것들이 끈질기게 따라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굳이 선택하라고 한다면 망각이 낫지 않을까. 빈 그릇 같은 신체라면 언제나 신선한 기분을 담을 수 있고 슬픔도 기쁨도 그때그때 소화해 버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반면 기억에는 잉여가 있다. 망각의 변기에 걸터앉아 냄새나는 기억들을 시원하게 내려보내 보지만 시인은 자신의 신체에 이미 잉여물이 슬고 간 알이 부화하는 것을 감지한다.

김종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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