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자 동의 없는 어업권 근저당 설정은 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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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자가 있는 어업권에 대해 전체 지분권자 동의 없이 설정된 근저당은 법적 효력이 없고, 이를 담보로 한 채권·채무 관계 역시 무효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최근 어업권을 전제로 한 차용과 이에 따른 분쟁이 잇따르는 가운데 나온 법원 판단이라는 점에서 관련 업계에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대구지법 서부지원은 지난 20일 경북 경주시의 한 해상가두리양식장 업주에게 돈을 빌려줬다 받지 못한 A 씨와 B 씨가 해당 어업권 근저당권자에 배당된 어업피해 보상금을 돌려달라며 제기한 배당이의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법원, 배당이의 소송 원고 승소
어업 손실 보상 배당 정정 결정
최초 채권자 2명, 보상금 수령
어업권 담보 채권 분쟁에 파장

재판부에 따르면 A 씨는 2011년 10월, 양식업주 C 씨와 금전소비대차계약서(차용증)를 쓰고 총 10억 원을 빌려줬다. 1년 뒤 변제하는 조건으로 약정이자 6.5%, 약정지연손해금 연 30%를 받기로 했다. B 씨는 2012년 2년 내 변제, 약정이자 30%로 3억 2000만 원을 건넸다.

그런데 양식업주 C 씨가 D 씨와 E 씨에게서 추가로 4억 원을 차용하면서 일이 꼬였다. D 씨와 E 씨는 돈을 빌려주면서 C 씨가 60% 지분을 소유한 양식어업권에 채권최고액 10억 원의 근저당을 설정했다. 이를 어업권 원부에 등록하고 면허권자인 경주시로부터 등록필증도 교부받았다.

당시 한국수력원자력(주)이 월성 1~4호기와 신월성 1, 2호기 가동에 따른 어업손실 보상을 진행했는데, C 씨 어업권에만 총 31억 6800만 원이 산정됐다. 이중 C 씨 몫이 19억 원으로, 변제가 안 되면 보상금으로 상계하면 된다는 계산이었다.

이후 C 씨는 2016년 사망했고, 보상금은 부인과 두 딸에게 상속됐다. 그러자 거액의 보상금을 놓고 채권자들의 압류와 추심명령이 잇따랐다. 결국 한수원은 법원에 보상금 공탁집행을 신청했다. 법원이 우선순위와 채권액에 따라 배당해 달라는 것이다. 앞서 10억 원 근저당을 설정했던 D 씨와 E 씨는 전체 3순위로 각각 6억 5200만 원을 배당받게 됐다.

반면 차용증만 썼던 A 씨와 B 씨의 배당금은 ‘0원’으로 책정됐다. 법적 우선순위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더 큰 돈을 빌려주고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게 된 A 씨 등은 지난해 D 씨와 E 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두 사람의 배당 근거가 된 어업권 근저당 설정이 무효라는 것이다.

문제의 어업권에는 C 씨 외에도 3명의 지분권자가 더 있었다. 수산업법 제23조 제1항은 ‘어업권의 공유자는 다른 공유자의 동의 없이 그 지분을 처분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A 씨 등은 근저당 설정 등록이 나머지 공유자 3명의 동의 없이 이뤄진 만큼, 설정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에 D 씨 등은 다른 공유자 동의를 받아 적법하게 근저당을 설정했고 정당한 근저당권자로 배당을 받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법원은 근저당권설정등록 신청 당시 공유자들의 동의서가 첨부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근저당권은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를 토대로 D 씨와 E 씨의 배당액을 ‘0원’으로 정정하고, A 씨와 B 씨에 대한 배당액을 각각 11억 6500만 원, 2억 3100만 원으로 경정했다. 한순간에 입장이 뒤바뀐 셈이다.

어업권을 담보로 한 채권, 채무 설정이 빈번한 어민들이 곱씹어봐야 할 판결이라는 게 지역 양식업계의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엄연히 공동의 재산임에도 지분이 많다는 이유로 임의로 처분하거나 물건으로 잡혀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지금도 비일비재하다”면서 “유사한 거래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문제가 없는지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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