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독립영화 성장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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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균 문화부장

‘즐겁고 행복한 고통’.

이질적인 단어 조합인데, 지난 12일부터 24일까지 꼭 해야 했던 과제를 실천한 시간을 표현하기엔 매우 적합하지 싶다. 과제란 부일영화상 본심 심사를 위해 후보작들을 보는 일이었다.

어림잡아 보니 매일 하루 두 편 정도는 봐야 하는 일정이었다. 보지 못한 영화들이 제법 있었고 이미 봤던 영화 중에서도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작품은 다시 한번 보자고 마음먹었다. 여가 삼아 볼 때와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어쭙잖은 책임감(?) 같은 것도 생겼다.

올해 부일영화상 본심 후보작들
독창적이고 신선한 소재 돋보여
심사 위한 작품 보는 시간 ‘행복’
10월 8일 시상 많은 관심 바라

일단 영화 볼 계획을 짰다. 평일에는 한두 편, 주말엔 좀 더 많이 보자. 오~ 재밌겠는데~. 갑자기 신이 났다. 핑계 삼아 주말에도 집안일은 아내에게 미루고 오랜만에 거실 소파에 편안하게 누워서 맛있는 간식 먹어가며 영화만 실컷 보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만 해도 설??다.

하지만 삶에는 반전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떨 땐 살맛이 나기도 하지만, 이번엔 좀 힘들었다. 영화 보기 계획이 완전히 틀어져서다. 평소엔 잘 일어나지 않던 자질구레한 일을 해결하느라 평일 저녁 시간을 많이 빼앗겼다.

결국 주말에 왕창 몰아 보기를 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에 네 편 정도를 신경을 곤두세워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화 평론가에 대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일요일이던 지난 23일, 퀭한 눈으로 영화를 계속 보고 있는 나를 아내가 불쌍한 듯 바라봤다.

그때 문득 신문방송학과 대학원 시절 교수님이 세미나 중에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TV 프로그램을 그냥 볼 땐 참 편안하고 좋은데 말이야. 평가하려고 보거나 학문의 대상으로 보면 힘들거든. 정말 이상하지.” 100% 아니 200% 동감한다.

부일영화상 본심 후보작을 몰아 보는 일은 힘들었지만, 뿌듯하기도 했다. 상업영화들도 좋았지만, 독립영화들의 눈부신 성장을 확인할 수 있어서였다. 작품 수준이 상당했다. 신선하고 독창적인 소재와 주제는 물론 감독의 연출력도 예상을 뛰어넘었다.

영화 ‘벌새’와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수작이었다.

김보라 감독의 ‘벌새’는 최우수 작품상과 최우수 감독상 등 7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중학생 은희가 겪는 일상을 보편적인 공감으로 끌어낸 감독의 섬세한 연출에 눈길이 머물렀다.

김초희 감독이 연출한 ‘찬실이는 복도 많지’도 최우수 작품상, 신인 감독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영화 프로듀서 찬실이가 일이 끊기자 친하게 지내는 배우의 가사 도우미를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흥미롭게 담은 영화다. 한 심사위원이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의 경계에 서 있는 작품이라고 언급했는데 아주 적확한 평가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고루 갖춘 작품이다.

조민재 감독의 ‘작은 빛’도 주목할 만한 영화였다. 뇌 수술을 해야 할 주인공이 의사로부터 수술 후 기억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뒤 가족들을 동영상으로 찍으면서 일어나는 일을 담담하게 그렸다. 사실적인 연기와 현실감 돋보이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은 신인 감독상과 신인 남자 연기상 후보에 올랐다.

영화 ‘메기’와 ‘호흡’, ‘나는보리’는 소재나 주제가 빛을 발하는 작품들이었다. 이옥섭 감독의 ‘메기’는 이 감독의 말처럼 믿음이 깨지고 다시 조합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그 과정에서 허를 찌르는 유머, 엉뚱하고 기발한 장면들이 탄생했다. 이 작품은 신인 감독상 후보작이다. 권만기 감독의 ‘호흡’은 유괴라는 범죄를 통해 죄책감과 트라우마, 연민이라는 감정을 스크린에 녹여 눈길을 끌었다. 이 작품은 신인 남자 연기상 후보에 올랐다. 김진유 감독의 ‘나는보리’는 가족 중 유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소녀가 가족들과 같아지고 싶은 마음을 따뜻하게 담아 감동을 전한다. 이 영화는 신인 여자 연기상 후보작이다.

이런 작품들을 볼 수 있었던 시간은 심사를 위한 고통을 행복이란 단어로 대체하기에 충분했다. 이들 영화를 보지 못했다면 꼭 한번 보기를 권한다. 색다른 감동을 맛볼 것이다.

1958년 부산일보사가 만든 부일영화상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상이다. 후보작 구성에서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간 균형을 잘 갖춘 게 특징이다. 올해 부일영화상 시상식은 10월 8일 해운대 벡스코 오디토리움에서 열린다. 코로나19로 시상자와 수상자 등만 초청해 관객 없이 열리는 게 무척 아쉽다. 하지만 부산 MBC와 네이버를 통해 시상식을 생중계하니 많은 관심을 바란다. 9월 1일 오전 11시부터 9월 7일 오후 5시까지는 본심에 오른 영화 24편의 주·조연 배우를 대상으로 남녀 인기스타상을 뽑는 관객 투표도 진행한다. 부일영화상 홈페이지를 통해서다. 많은 참여를 부탁드린다. kjg1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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