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의 지금 여기] 사랑은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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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김원일의 <늘 푸른 소나무>(1993)는 일제강점 초기부터 3·1 만세운동 뒤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 대하소설이다. 지극히 인간적인, 그러나 어떤 면에선 신과 근사치에 가까운 한 인간이 그려진다.

주인공 석주율. 종의 신분으로 태어나 우국지사인 주인으로부터 글을 깨친 뒤 독립운동에 헌신하는 인물이다. 일제에 저항하다 옥살이하고 불쌍한 사람을 돕는 빈민운동 중 숱한 아픔을 겪지만, 그는 철저히 비폭력을 견지한다. 불의에 타협 없는 항거 방식이 비폭력이라니, 어찌 보면 답답하다. 그래서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 또한 육욕과 명예, 안락함의 유혹이 끊임없이 그를 시험한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절망, 심지어 목숨을 잃을 위기까지 이겨내는 그의 행적은 초인적이다. 강한 심성을 타고나서가 결코 아니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인간’일 뿐이지만 마음의 바닥에서 일어나는 고뇌를 딛고 끝내 고난을 극복해 나가는데, 그 인물됨에 감화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예수를 떠올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주인공은 기독교를 통해 사랑과 비폭력의 드넓은 경지를 체화한 것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 낮은 곳 보듬고
참사랑 실천 기독교 선각자들 많지만

코로나 시대 극단적 이기주의 발현
지금 개신교 보는 시선 곱지 않아

교회가 더 참회하고 더 낮아져
세상의 아픔 품는 순수성 회복하길


예수나 석가, 공자는 위대한 인간이다. 그리고 간디나 슈바이처, 세종대왕 등 인류가 칭송하는 인간들이 있다. 삶과 자신이 추구하는 길을 일치시켜 인간이 이룰 수 있는 정상에 도달한 사람. 신은 아니지만 지극히 인간적이면서 기림을 받을 만한 인간. 완벽한 신과 그에 가깝고자 하는 인간을 잇는 것이 종교일 것이다. 그 가운데에 ‘사랑’의 종교, 기독교가 있다. 기독교 정신이 우리나라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전쟁의 참화 속에서 고아를 돌보거나 산업화 과정에 낙후된 의료시설로 죽어가는 수많은 생명을 살려낸 사람들이 있다. 온갖 고난 속에서 순교한 선각자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참사랑을 실천한 이들을 일일이 열거하기는 힘들다.

기독교는 천주교와 개신교를 아우르는 말로, 구분이 필요하다. 중세 유럽을 지배해온 가톨릭의 타락에 대한 비판으로 종교개혁이 시작됐고 그 토대로 새롭게 일어난 것이 개신교다. 조선에 가톨릭(천주교)이 들어오는 과정은 다른 나라와 달리 서학이라는 학문을 통해서였다. 중국에서 이념 서적이 먼저 들어왔고 공부 모임을 통해 평민 사이로 퍼져나갔다. 반면 개신교의 한국 유입은 훨씬 늦었다. 개항기에 개신교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하면서 그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후 한국 개신교의 확장세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놀라운 것이었다. 2014년 한국 개신교 교회는 7만 8000개로, 당시 전국 편의점 수의 3배를 훌쩍 뛰어넘는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이념이 담긴 기독교 정신과 민주주의적 사상이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사회가 개신교를 바라보는 시선은 대단히 부정적이다. 교회는 부패와 타락의 상징, 집단 이기주의 및 편견과 혐오의 전파 집단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그 이면에는 기복신앙으로 전락한 세속화의 모습과 함께 우상숭배 대상으로 변질된 목사들의 자질 문제가 도사린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다른 교회를 도외시하는 배타적 문화가 엄존한다. 한국 개신교가 관용의 덕목을 내던지고 종교적 순수성을 잃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코로나19 재난을 맞아 극단적 사태가 드러났으니, 바로 ‘신천지’나 ‘전광훈’으로 대표되는 현상이다. 특히 ‘전광훈’ 현상은 극우 정치 이념과 근본주의적 믿음이 결합한 한국 교회의 민낯이라 할 만하다. 감염 위험성에 아랑곳없이 광화문 집회를 강행하고 대면 예배를 고집하는 일이 어떤 정당성을 갖는지 모르겠다. “바이러스 테러” “확진자 조작” 같은 가짜뉴스를 퍼뜨리며 국가 방역 체계까지 흔드는 이것이 참된 종교라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말하는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지난달 24일, 뒤늦게 책임을 통감하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명의의 성명서가 나왔다. ‘복음을 전파해야 할 교회가 도리어 코로나19의 슈퍼전파자가 되어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향한 분노와 아우성 속에서 하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송하고 세상 앞에 미안합니다. 회개로 무릎을 꿇고 참회로 엎드립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신이지만 인간을 사랑해서 인간과 소통하고자 사람이 되셨다고 한다. 자신을 낮추어 낮은 자와 함께 한다는 정신이다. 성경의 그분은 한국 민중들에게도 다가와 그 자신을 낮추었을 것이다. 한국 교회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교회가 무엇인지, 믿음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반성과 참회는 더 통렬해야 하고, 교회는 더 낮아져야 할 것이다. 자신을 희생해 세상 아픔을 품는 손과 발이 된 예수를 되찾으려면.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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