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자연재해에 잇달아 멈춰 선 고리원전, 시민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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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설보다 안전해야 할 원자력발전소가 자연재해에 침수되고, 멈춰서는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 지난 7월 말 폭우로 신고리 3·4호기의 송전 설비가 물에 잠기는 황당한 사고가 발생했다. 게다가 발전소 일부 건물까지 빗물이 샜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이 사실이 주민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원전 당국의 밀실·비밀주의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와 같은 우려가 잦아들기도 전에 이번에는 태풍 마이삭에 원전 4기의 가동이 연달아 중단되는 어이없는 사고가 또 일어나고 말았다. 지난 3일 오전 약 세 시간에 걸쳐 신고리 1호기, 신고리 2호, 고리 3호기, 고리 4호기가 순서대로 정지해 버린 것이다. 고리본부는 발전소 밖 전력 계통 이상을 정지 원인으로 추정하고 정확한 원인을 파악 중이다.

지구 온난화 따른 기후 위기 원전 위협
최악의 재앙 막을 대책 빨리 마련해야

예측하지 못한 역대급 폭우와 태풍으로 두 사건이 일어났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 이후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한국 원전들에 대한 보강 공사가 실시됐다. 이는 어떤 자연재해에도 ‘사고 제로’가 되어야 한다는 원전의 특성을 고려한 조치였다. 그러니 후쿠시마를 때린 쓰나미의 위력에 비교도 되지 않을 폭우와 태풍에 원전이 물에 잠기고, 가동이 멈췄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원전 관리가 이처럼 허술하다 보니 비슷한 일이 곧 생길지 모른다는 공포가 들 정도이다. 며칠 후인 다음 주 월요일에 마이삭보다 더 강한 태풍인 하이선이 남해안을 다시 강타할 게 확실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폭우나 초강력 태풍이란 기상 이변이 동해안을 위협하는 일이 앞으로 더 잦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장마와 태풍을 조절해 온 대기 구조가 망가지면서 자연재해 강도와 횟수가 악화할 것으로 기상 전문가들이 내다보고 있다. 그런데 원전 사고가 한 달이 멀다고 발생하고 있으니 시민 불안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는 부산과 울산만의 고민으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나라 동해안은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지로 알려져 있다. 고리 원전을 비롯해 월성 2~4호기, 신월성 1~2호기, 한울 1~6호기 등 모두 18기의 원전이 전력을 생산 중이다. 자연재해에 더없이 취약한 원전 앞에 모든 국민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기후 위기에 맞춰 원전 안전 기준을 재검토해야 한다. 기존 조치가 부족했다면 개정해야 마땅하다. 쓰나미에 버금가는 폭풍 해일이나 기존 강수량을 훨씬 뛰어넘는 폭우를 상정하고 보강 공사를 하는 방안도 찾는 게 맞다. 언제까지 비바람이 불 때마다 원전 인근 주민들이 가슴을 졸여야 하는가. 비상 전력 공급 대책 마련도 필수이다. 3일 사고는 태풍으로 여러 원전이 한꺼번에 셧다운 될 수 있다는 위험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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