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편견의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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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문학평론가

개와 함께 산책하러 나가면, 사람들이 말하곤 했다. “어머! 예뻐라!” 그리고 예외 없이 묻는다. “종(種)이 뭐예요?” 대답을 망설이면 그들은 여지없이 다시 묻는다. “종이 뭐냐니까요?” 대답한다. “예쁜 개입니다.” 어안이 벙벙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은 다시 묻는다. “종이요? 뭐냐고요?” 다시 대답한다. “하얀 개입니다.” 이쯤 되면 성을 내는 사람도 있다. “글쎄, 종이요?” 다시 대답한다. “우리 집에 사는 하얗고 예쁜 개입니다”

좋은 품종만이 좋은 개를 만든다는 편견은 우리 사회 깊숙이 침투해 있다. 애견 숍에서 팔리는 비싼 개만 좋은 개라고 믿는 이들도, 그렇게 샀던 개를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참하게 버리는 이들도, 그러한 편견에서 무관하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다. 개는 키우는 사람을 따르는 법이니, 인간이 잘 키우고 예뻐하면 저절로 예쁜 개가 될 것이다. 그 개가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것은 대부분 반려인 때문일 것이다. 개들은 그 어떤 누구보다도 반려인을 많이 닮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기의 개를 예쁜 개로 키우는 이들의 마음이, 품종을 따지고 순종을 따지는 이들의 마음보다 예쁘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반려견과 산책 때 품종 많이 물어
‘좋은 품종이 좋은 개 만든다’ 편견

국민 위험에 몰아넣은 종교지도자
환자 돌보지 않고 파업 감행 의사
‘자신만 특별하다’ 맹신 빠지기 쉬워
자신 앞에 놓인 사람들 떠올렸으면

요즘 자신이 믿는 편견이 세상 누구의 생각보다 우선한다고 믿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종교 지도자가 직분을 망각하고 대다수 국민들을 위험에 빠뜨리고도, 사과조차 없이 자신이 믿는다는 황당한 편견만을 호도하는 사례가 그러하다. 자신을 믿는 환자들을 우선 돌보아야 하는 의사들이 직분을 팽개치고 파업을 감행하고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상황도, 따지고 보면 의사에 관한 일은 자신들만 결정할 수 있다는 편견의 소산일 것이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는 그들의 문제도 그러한 편견의 한없는 깊이를 보여준다.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 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를 고르시렵니까 아니면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를 고르시렵니까. 나에게 묻지는 않았지만, 이 문제를 보자 나는 꼭 되묻고 싶어졌다. “그렇다면 매년 전교 1등을 해서 결국 의사가 되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의술 능력과 함께 그 어떤 사람들보다 뛰어난 판단력도 저절로 얻는다는 것인지요?” 이렇게도 묻고 싶다. “성적이 모자란 사람은 의사가 되어서는 안 되고, 전교 1등만 의사가 되어야 하는지요?” 무엇을 믿고 무엇을 판단하라고 이러한 문제를 세상에 내놓았는지 모르겠다. 질문을 다시 만들고도 싶다. “의사가 되는 자격은 전교 1등인가요? 아니면 사명감인가요?” “전교 1등만 의사가 되는 세상을 고수해야 한다는 말은, 많은 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을 만들면 안 된다는 뜻인가요?”

그들의 질문을 마주한 나는 그동안 학생들을 이렇게 가르쳤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공부를 안 한다고 늘 야단을 쳤지만, 그래서 영화인이나 연극인이 되지 못한다고 가르친 적은 없었던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의사협회 질문 방식으로 환원하면,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특별한 사람들을 가르쳐서는 안 될 테니 말이다.

우리 개는 품종 경연대회에서 매년 1등을 한 개가 아니었다. 머리가 좋아서 무엇이든 척척하고 남들이 감탄해 마지않는 특별한 능력을 소유한 개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어떤 개보다 소중했고, 지금도 그 개 이상의 개가 내 인생에 다시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목사도, 의사도, 자신을 특별하다고 믿는 사람도, 자신 앞에 놓인 사람들을 그렇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편견의 깊이는 자신들만 특별하다고 믿는 맹신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한 번 깊이 돌아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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