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외로움도 훈련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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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영화 ‘테스와 보낸 여름’ 스틸컷.
에이케이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때가 몇 살이었지? 혼자 잠을 자기 시작할 무렵, 엄마와 떨어져 자는 게 왜 그렇게 무섭고 두려웠던지 그저 방 하나를 건너왔을 뿐인데 꽤 오래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구상에 혼자 남았다는 느낌, 버려졌다는 생각이 한번 휘몰아치면 새벽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그땐 뭐가 그렇게 무섭고 불안했을까? 영화 ‘테스와 보낸 여름’을 보면서 샘이 연습한 ‘외로움 적응 훈련’을 나도 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했다. 하루는 2시간, 다음 날은 4시간 그렇게 조금씩 외로움에 적응하는 훈련을 했다면 ‘샘’의 생각대로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네덜란드 신예 감독 장편 데뷔 작품
‘테스와 보낸 여름’ 다수 영화제 수상

4차원 소년 샘과 소녀 테스 이야기
‘외로움 적응 훈련’ 엉뚱한 상상력에
이국적 풍경 더해져 위안 주는 영화


‘샘’은 가족과 함께 떠난 휴양지에서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소위 말하는 4차원 소년이다. 그러던 중 가족들과 공놀이를 하던 중에 형이 발목을 다치게 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샘은 섬에 살고 있는 ‘테스’라는 소녀와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 이후 샘의 열 살 인생에서 가장 이상하지만, 최고로 멋진 일주일이 펼쳐진다.

샘은 평소 지구의 마지막 공룡의 마음이 어땠을까를 궁금해 하며 엉뚱한 질문을 던지기 좋아하는 자신만의 세계관이 확고한 아이다. 최근에는 가족들이 모두 죽고 난 후 막내인 자신만 홀로 남겨질 것을 대비해 외로움 적응 훈련을 시작했다. 그런 샘의 인생에 테스가 끼어들면서 계획에 없던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섬 소녀 테스는 샘보다 더 엉뚱한데다 능청스럽기까지 하다. 샘과 처음 만난 날 살사를 같이 추자고 해서 샘의 정신을 쏙 빼놓더니 다음 날부터는 아예 절친이 된다. 그런데 테스의 행동이 수상하다. 이벤트에 당첨되어 테스네 숙소에 묵게 된 휘호 커플과 소풍을 가자고 하고, 게임을 하자는 등 그 커플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안달이다. 샘은 외로움 적응 훈련을 하는 틈틈이 테스가 원하는 일은 무엇이라도 들어주려 하지만, 테스가 휘호 아저씨를 좋아하는 것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참다못한 샘이 결국 테스에게 한 소리를 하자 테스는 그제야 자신이 휘호에게 이상하게 굴었던 비밀을 털어놓는다.

영화는 어찌 보면 진부한 소재를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 죽음이나 혼자 남겨지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있지 않나? 영화는 이런 평범한 상상으로 시작해 잘 모르던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추억을 쌓는다는 지극히 일상적인 에피소드들을 버무려 놓는다. 우리는 이를 보며 진부함이 아니라 ‘힐링’이라고 읽는다. 아마도 영화를 보는 내내 샘과 테스의 순수한 행동들에 절로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영화는 네덜란드 영화계의 차세대 감독으로 꼽히는 스티븐 바우터루드의 빛나는 장편 데뷔작이다.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그의 연출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또한, 이 작품은 네덜란드의 세계적인 아동 문학가 안나 왈츠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며, 지난해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K플러스 부문 국제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을 비롯해 전 세계 영화제에서 16개 부문 수상을 기록하며 주목을 받았다.

영화 촬영지는 섬 대부분이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네덜란드의 섬 ‘테르스헬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올여름 휴가를 못 간 이들에게 휴식 같은 시간을 선물할 것으로 확신한다. 코로나19로 통째로 빼앗겨 버린 우리의 여름을 보상해 줄 이국적 풍경들이 스크린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푸른 바다, 새하얀 구름, 해변 위 낡은 집마저 한 폭의 그림이다. 언제 여름이 다 가버렸나 우울한 사람들, 휴식이 필요한 이들에게 이 착한 영화 한 편을 추천하고 싶다. 굳이 어딘가 떠나지 않아도 마음이 고요해지고, 따뜻해지는 느낌을 전달 받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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