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선의 해양 TALK] 정말 끝내 주네, 아이슬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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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선임연구위원

무인도였던 그 섬에 사람이 찾아왔다. 노르웨이의 바이킹 족장인 잉골프 아나르손이었다. 뱃사람들을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초기 노르웨이인이 주축이었던 인구 구성도 다양해졌다. 바이킹의 팽창 시기와 맞물리면서 북유럽에 거주하던 스코틀랜드 사람까지 북대서양의 거친 파도를 넘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통일신라 경문왕이 집권하던 서기 874년. 아이슬란드는 이렇게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사람이 살 수 없었던 척박했던 이 나라는 지금 인구 36만 명, 1인당 국민소득이 5만 달러가 넘는 강소국으로 성장했다. 물론 그동안 곡절도 많았다. 1947년 독립 전까지 노르웨이와 덴마크 등 외세의 침략과 식민통치를 받았다. 1000년 넘게 압제와 속박 속에서 살아남은 셈이다. 어업과 목축 등 1차 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금융시장을 개방하면서 2008년엔 국가 부도 위기도 맞았다. 당시 5000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외국으로 집단 이주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북대서양의 척박하고 작은 섬나라
수산업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육성

가격 변동성 약점, 정책으로 극복
폐기물 제로 통해 단순 가공 탈피

최근엔 해양 클러스터 주목받아
비슷한 여건 부산에 좋은 본보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처방이 쏟아졌다. 그런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 정부는 3가지 대책에 집중했다. 관광과 산업구조의 다각화, 그리고 수산 부문 혁신에 국가의 명운을 걸었다.

먼저 승부를 건 부문은 관광이었다. 구제금융 신청으로 달러 가치가 높아지면서 역설적으로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이 기회를 파고들었다. 관광 인프라 개선에 나서는 한편, 천혜의 청정 자원에 초점을 맞춘 에코투어리즘과 고래 관광에 공을 들였다. 그 결과 2016년에 인구의 4배가 넘는 160만 명이 찾아왔다. 지난해에는 200만 명을 넘었다.

국가 부도를 불러온 금융·서비스 산업에도 손을 댔다. 산업에서 금융섹터가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는 데 주력했다. 대신 새로운 성장 동력을 ICT 소프트웨어 개발, 바이오산업에서 찾았다. 부가가치가 높은 기업회계 처리 서비스에도 눈길을 돌렸다. 이런 정책들이 성공하면서 경제 위기 당시 3만 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던 국민소득도 다시 5만 6000달러로 높아졌다.

수산업은 아이슬란드의 국가 기간산업이다. ‘얼음과 요정의 나라’에서 사실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국토 대부분이 화산과 산악 지형이고, 양떼 목장으로 쓸 수 있는 목초지는 24% 안팎에 불과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지열과 수력 자원이 풍부하다는 점이다. 전체 전기 생산량의 85% 이상이 신재생 에너지로 채워지고, 세계 최초로 수소 버스를 도입한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기를 먹고는 살 수 없는 노릇. 연평균 기온이 10도에 지나지 않는 이 나라에서 어업과 목축업이 주력 산업으로 발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아이슬란드에서 수산업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유별나다. 바닷물이 찬 북대서양 연안에 대구와 청어, 해덕(대구과 흰살생선) 등이 많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는 수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 1970년대 영국과 ‘대구 전쟁’도 불사했고, 어업이 한창 전성기를 구가할 때는 수출품의 90% 이상이 수산물로 채워지기도 했다.

문제는 수산업이 변동성이 크다는 점이다. 아이슬란드 경제에서 수산업 의존도는 40%다. 생산량이 줄어들거나 수출 가격이 내려가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경제 구조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아이슬란드는 3가지 정책을 들고나왔다. 바다에서 잡는 물고기 어획량을 사전에 정해 준다는 점이다. 생선의 남획을 막자는 판단이다.

가장 혁신적인 대책은 수산물을 100% 활용하는 이른바 ‘Zero Waste’다. 물고기를 잡아 폐기물 하나 남기지 않고, 머리에서 꼬리까지 완벽하게 쓰자는 것이다. 아이슬란드 수산 혁신 전문가 토로 시그퍼슨은 이 방법을 쓸 경우 지속 가능한 수산업이 가능하고, 수산물의 부가가치를 10배 이상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수산업의 새로운 파도>). 필렛으로 판매하는 단순 가공에서 벗어나 이용 가치를 극대화하면 화장품·의약품 등 관련 산업 생태계도 덩달아 커진다는 논리다.

아이슬란드의 해양 클러스터(IOC)도 주목받고 있다. 2012년에 문을 연 이곳은 민간 부문이 주축이 돼 수산업계와 테크 기업 등 수산 이외의 전문가와 기업들을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IOC는 ‘Zero Waste’ 사업을 주도하면서 아이슬란드의 새로운 수산업 성장을 이끄는 주도 세력으로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이곳의 성공 요인으로 수산과 비수산의 네트워킹을 꼽는다. 아이슬란드는 열악한 주변 환경을 긍정 에너지로 바꾼 대표적인 나라다. 특히 대구산업 클러스터는 글로벌 해양 클러스터의 모범으로 꼽히고 있다. 최근 부산은 수산식품 클러스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아이슬란드 사례에도 관심을 가져 보자. 결과는 언제나 우리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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