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토종 실내 설계·디자인 여객선, 우리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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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찬 (주)제이텍 대표

“국내 업체가 처음 콘셉트디자인·설계한 여객선 띄웁니다.”

세계 최고 조선 강국 대한민국에서 이런 얘기를 들을 줄은 몰랐다. LNG선을 비롯한 화물선 분야에서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가진 우리나라가 여객선 분야에서는 아직 독자적인 설계와 디자인을 적용한 배를 만든 적이 없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7년 전 선박 인테리어 전문가 모아
독자 개발 기술로 여객선 시공 참여
“한국도 크루즈선 건조에 나서야”

여객선과 화물선 껍데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결정적 차이는 실내 공간이다. 화물 운송이 목적인 화물선은 내부가 비교적 단순한 반면 여객선은 공실(공용 공간)·객실 구획과 면적 배분, 승객 동선을 고려한 내부 구성, 복잡한 전기·공조 장치 배치를 얼마나 정밀하게 잘 하느냐에 따라 품질이 천차만별이다. 조선업 최정점에 크루즈선이 있다 할 정도로 부가가치도 높고 유럽이 아직 손을 떼지 않은 분야다.

1988년 선실 기자재업체 (주)제이텍을 설립한 박종찬 대표는 이런 현실이 못마땅했다. 언제까지 유럽 디자인 카피하고, 일본 낡은 배 들여올 것인가. 유럽 기자재업체들과 기술 제휴를 맺고 꾸준히 실력을 쌓은 제이텍은 2008년 제조업에도 뛰어들었고, 2013년부터는 본격적인 선박 인테리어 분야 전문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여객선 발주가 줄줄이 있는 게 아니어서 업계에선 일감 떨어지면 사람들을 내보내고, 수주 받으면 다시 고용하는 방식으로 일해왔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기술 축적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저는 정규직 고용을 시작했습니다.” 업계에선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지금은 16명 정도가 전문 기술 인력으로 일하고 있다. 고용뿐 아니라 교육·훈련에도 열성이었다. 유럽 크루즈선을 팀 단위로 타고 지구촌을 누비면서 선박 내부를 속속들이 사진과 기록으로 남겼다. 그렇게 만든 책이 3권이다.

숙련 기술자가 모이자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강화된 국내 여객선 건조 기준을 적용해 2017년 여수~제주 노선에 취항한 한일카페리 여객선의 인테리어 부문을 턴키 계약으로 수주했고, 29일 전남 목포와 제주 노선에 취항하는 씨월드고속페리의 퀸제누비아호(2만 7000t급) 전체 내부 설계와 공실 부문 시공까지 맡았다. 선사 요구를 수용해 국내 업체가 독자 개발한 설계를 적용한 첫 여객선이라는 점에서 퀸제누비아호와 제이텍은 국내 조선사 한 페이지에 남게 됐다. 박 대표는 호주에서 발주한 초쾌속선 내부 디자인 계약도 조만간 예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여객선 내부 독자 설계를 할 수 있는 업체는 제이텍이 유일합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크루즈선을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정부 투자도 필요하고요.” 박 대표는 유럽이 중국에 크루즈선 건조 발주를 여러 건 시작한 데 주목했다. 유럽-일본-한국-중국 순이던 화물선 건조 기술 흐름에서 크루즈선 분야는 중국이 우리를 앞설 수 있게 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능력이 있음에도 전혀 손도 대지 않은 크루즈 건조 산업이 우리 조선업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박 대표의 지론.

“국내 조선사 인프라 구축이 선행돼야겠지만 정부가 9000억 원짜리 크루즈 2척을 2개 조선사에 발주해 경쟁시키면 국내 크루즈 조선 시장 발전을 크게 앞당길 수 있을 겁니다. 국내 업계가 유럽 업체들과 기술제휴와 협력을 통해 빠르게 발전하고, 그렇게 만든 배를 동해와 서해에 각각 띄워 크루즈 저변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중국의 크루즈선 실력이 드러날 3년 내 우리 스스로 기회를 만들 수 있을까. 박 대표는 오늘도 그 준비를 착실히 해나가고 있다.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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