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울산 고층건물 화재, 원인·대처 철저한 재검토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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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심야에 울산에서 발생한 화재로 온 국민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33층 규모의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난 불은 건물 전체를 집어삼킬 듯 화염을 내뿜으며 맹렬하게 타올랐다. 각종 매체를 통해 그 장면을 본 국민들은 수년 전 밀양의 한 병원에서 벌어졌던 참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울산 화재는 일부 주민이 연기를 마시거나 찰과상을 입어 치료를 받았을 뿐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으니 천만다행이라 하겠다. 무엇보다 화재 매뉴얼에 따른 주민들의 침착한 대응이 대형 참사를 막았다고 한다. 평소 안전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 재난 상황 때 얼마나 큰 효과를 발휘하는지 여실히 보여 준 사례일 테다.

10년 전 해운대 주상복합 화재와 판박이
대상 건물 전수조사 등 근본 대응 나서야

비록 큰 참사는 없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불길이 잡히기까지 16시간 동안은 생과 사를 오가는 긴박한 시간이었다. 불덩이가 된 패널이 창 밖으로 떨어지는 가운데 현장에선 초속 15m의 강풍까지 불었다. 놀란 주민들이 수건에 물을 적셔 집 밖으로 대피하려 했으나 수돗물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또 화재 탓으로 현관 번호키 문도 작동하지 않았고, 복도는 연기가 자욱해 휴대전화 조명을 켜고 기어서 계단으로 33층 옥상까지 올라가는 등 당시 상황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대피 과정에서 가족과 헤어진 일부 주민은 황망히 가족에게 전화하며 불길이 치솟는 건물을 바라보고 흐느끼기도 했다.

이번 울산에서의 사고는 화재에 대한 우리나라 고층 건물이 갖는 구조적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아직 정확한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건물 외벽 알루미늄 복합패널과 이를 붙이는 데 쓰인 가연성 접착제 때문에 불길이 급격히 번진 것으로 추정된다. 시공이 간편하고 얇아 고층건물에 많이 사용되는 알루미늄 복합패널 내부 충진재와 접착제, 실리콘 마감재는 불에 매우 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6층 이상 건물에는 불연성 외장재 사용이 의무화됐지만, 그전에 지어진 이번 울산 주상복합 아파트는 대상이 아니다. 울산에 고층건물 화재 진압용 고가사다리차가 한 대도 없었던 점도 화재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번 울산 화재는 2010년 부산 해운대에서 발생한 38층짜리 고층건물 화재의 판박이다. 당시에도 강풍과 함께 가연성 알루미늄 패널로 된 외벽 마감재 때문에 불이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번진 것으로 밝혀져 그에 대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고층건물 화재 진압에 고가사다리차가 필수적이라는 사실도 그때 확인됐다. 그동안 10년의 세월만 헛되이 보냈을 뿐 달라진 건 거의 없었음이 이번 울산 화재로 밝혀진 셈이다. 이번 사고는 고층건물 화재에 대한 기존 대응 방식에 철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전국 고층건물에 대한 전수조사 등 근본 대응책 마련에 조속히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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