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부산지검의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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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국 사회부 중부산팀장

풍진세상 살아가며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를 비롯해 누구나 쉬이 내보이기 부끄러운 기억 하나씩은 있을 겁니다.

법을 집행하는 사법부, 그중 기소권을 가진 검찰도 예외는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데 8일 부산지검은 “부산진구에서 강제추행 혐의로 체포된 전 부장검사 A 씨를 불기소 처분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올 6월 만취 상태로 길 가던 피해자의 어깨를 건드리고 700m를 쫓아가다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체포된 사건 말입니다.

부산지검이 불기소를 결정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A 씨가 어깨를 한 차례 쳤지만 피해자가 놀라서 돌아보자 뒤로 물러서며 두 손을 들고 아니라는 듯한 자세를 취했고, A 씨가 피해자를 계속 쫓아가기는 했지만 대로변이었고 추가적인 신체 접촉은 없었기 때문에 강제추행 혐의는 없다는 겁니다.

당사자끼리 원만하게 합의까지 끝난 사안이랍니다. 기소가 됐다 한들 벌금이 전부였겠지요. 말 그대로 자다가 이불 한 번 걷어찰 만한 부끄러운 기억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경찰이 3주 만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단순 추행 사건을 검찰은 3개월 가까이 쥐고 있다 불기소 처분을 내렸습니다. 엄연히 피해자 신고가 있었고, 당시 상황이 적나라하게 녹화된 CCTV 영상이 있고, A 씨가 현장에서 체포된 사건인데도 말입니다.

제대로 된 CCTV 영상도 없는 상태에서 논란을 거듭하다 피의자가 법정구속까지 당한 이른바 ‘곰탕집 성추행 사건’이 불과 1년 전입니다. 이런 시국이니 부산지검의 이번 불기소 처분은 누군가에게는 ‘우리 식구는 벌금형 하나 인정할 수 없다’라는 식의 기소권 남용으로 비치지 않겠습니까.

부산지검은 “형사적인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공직자로서의 비위행위에 대해서는 감찰 절차를 통해 징계 처리하겠다”고 합니다. 형사 책임이 없다면서 그게 왜 공직자로서 비위행위에 해당하는지도 의문이고요.

부산지검은 이 단순 추행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하기 위해 전문수사자문위원의 의견을 청취하고 직권으로 검찰시민위원회까지 개최했답니다. 아마도 ‘제 식구 감싼다’는 비난을 면하기 위한 자구책이겠지요. 그러나 이름도 생소한 검찰시민위원회가 과연 검사가 아닌 일반인이 추행 피의자가 됐다해도 똑같이 방패막이가 될 수 있었을까요.

언제부터인가 관공서에서는 껄끄러운 발표는 금요일 저녁에 작정하고 내놓는 게 관례가 된 모양입니다. 공정함을 기했다는 수사 결과를 부산지검은 한글날까지 끼워 연휴 전날 저녁 부산의 취재진이 당일 뉴스를 매조지할 즈음에 공개했습니다.

아들의 휴가 미복귀 의혹으로 공분을 사고 있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연일 종착역 없는 검찰개혁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바꿔 생각해보면 추 장관에 대한 반발 여론이 어째서 추 장관에게 채찍질을 당하고 있는 검찰에 대한 동정 내지는 지지 여론으로 바뀌지 않는지 이제 부산지검을 비롯해 검찰도 한 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k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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