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사번 23733 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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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을 막 지난 듯하지만 어느덧 가을의 한가운데. 10월 중순 해 뜰 무렵의 영도는 제법 바람이 차가웠다. 15일 오전 6시 40분. 백발의 여성이 조선소 정문을 등지고 섰다. 곧이어 부산 김해 울산 등지에서 온 통근 버스가 사람들을 토해 냈다. 사람들은 마주 선 그를 스치듯 공장으로 들어갔다. 그는 그때마다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며 가벼운 목례를 건넸다. 몇몇은 덩달아 눈인사를 건넸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애써 다른 곳을 보며 지나쳤다. 6월 23일부터 115일째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정문에서 펼쳐지는 풍경이다.



그도 한때는 무리 속에 있었다. 1981년 대한조선공사 훈련생으로 입사해 다른 이들과 함께 정문을 드나들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조선소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컸다. 직접 매만진 선박을 배경으로 당당히 기념사진도 찍었다. 하지만 고작 5년을 넘기지 못했다. 노조 대의원으로 선출돼 입바른 소리를 한 게 화근이었다. 경찰에서 고초를 당했다. 회사는 노조 활동을 할 수 없는 직업훈련소로 발령을 냈다. 인사명령을 따를 수 없었다. 기다렸다는 듯 무단결근을 이유로 해고 통보가 왔다. 그가 35년째 담장 밖을 맴돌고 있는 이유다.

사실 309일은 회사 안에 머물기도 했다. 한진중공업으로 이름을 바꾼 회사는 2010년 말 경영난을 이유로 정리해고를 추진했다. 해고 노동자인 그는 2011년 1월 6일 새벽 홀로 35m 높이 크레인에 올랐다. ‘희망버스’ 바람을 일으키며 10개월을 쇳덩어리에서 버틴 끝에 기어이 동료들의 정리해고를 막아 냈다. 하지만 정부로부터 민주화운동 경력을 인정받은 그의 복직은 성사되지 않았다. 국가기관인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가 회사에 복직을 권고했지만 여전히 철옹성이다.

그는 2년째 암세포와 동거하고 있다. 12월엔 60세 정년이다. 두 달 남짓 남았다. 그래서 생긴 꿈이 ‘해고자’ 대신 ‘사번 23733’으로 당당히 회사 문을 나서는 것이다. 복직 없이는 정년도 없다는 각오지만 현실은 여전히 차갑다. 회사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에 의해 매각이 추진되고 있다. 그래도 포기는 없단다. 노동 존중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복직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난달엔 부산시의회가 복직결의안을 채택했다. 9년 전 희망버스에 올랐던 국회의원들까지 힘을 보태면 통근 버스에 오르는 꿈이 머지않아 실현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7시 30분. 마지막 통근 버스가 떠난 뒤 자리를 정리하는 구호가 울렸다. “김진숙을 복직시켜라.” 김희돈 교열부 부장 happ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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