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리뷰] ‘퍼스트 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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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이 수수·굳건한 우정·신뢰 매 순간 놀랍고 따뜻하고 아름다워

영화 ‘퍼스트 카우’는 두 사람의 관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감독의 예전 작품 ‘올드조이’(2006)를 연상케 하지만, ‘믹의 지름길’(2010)에 이은 켈리 라이카트의 두 번째 서부극에 더 가깝다. 그는 지극히 단순한 서사 위에 인물들을 두고 그들이 선 장소, 그들의 감정과 일상을 세심하게 살피는 뛰어난 관찰자다. 쿠키(존 마가로)가 홀로 숲에서 보내는 시간만 봐도 그렇다. 그는 정성스러운 손길로 버섯을 채취하다가, 배를 보이며 뒤집어진 도마뱀을 도와준다. 그러고 나서야 다른 버섯을 향해 다시 팔을 뻗는다. 지주(地主) 팩터(토비 존스)의 우유를 훔치려는 와중에도, 소에게 다정한 말을 건넨다.

사회적 지위나 계급은 쿠키를 약자로 분류하겠지만 이 사내에게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낼 용기가 있다. 덕분에 킹 루(오리온 리)가 목숨을 건진다. 그 역시 은인을 잊지 않는 사람이기에 오갈 데 없는 쿠키를 누추하나마 자기 집으로 데려온다. 킹은 그가 편하게 있기를 바라며 장작을 패러 나간다. 하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집주인의 모습이 마음에 걸려 쿠키는 문간에 있는 빗자루로 청소를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서로 역할을 나누며 죽을 때까지 함께하는 친구가 된다. 이때 그들이 서 있던 창과 문은 전통적 서부 영화가 견지하던 무법자들의 세계와 문명이라는 질서를 구분 짓는 경계로 작동하지 않는다.

사실 ‘퍼스트 카우’는 이미 그전에 많은 것들을 섞어 놓았다. 떠돌이 주인공들은 유대인과 동양인이고, 지주의 아내는 토착민 여인이다. 물 위로 유유히 흐르는 조각배가 그렇듯 창과 문 너머로 보이는 두 사람은 그저 계절이 깊어진 숲의 풍경 일부인 것만 같다. 그러니 이 영화에서는 우락부락한 서부의 사나이들일지라도 고향의 맛을 찾아 그만하면 유순하게 줄을 서서 비스킷을 사 먹고 감탄하는 광경이 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강렬한 드라마와 사건이 아닌 그저 사소한 말과 행동만으로도 거기에 담긴 사람들의 염치와 예의가 가만히 헤아려질 때가 있다. 이 영화의 품위는 바로 거기서 비롯된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수수하고 굳건한 우정, 그리고 신뢰. 그로 인해 이 영화의 매 순간이 놀랍고, 따뜻하고, 아름답다. 탐욕과 배신, 다툼이 침투할 여력이 없으니 그들의 존재는 미약할지언정 결코 불안하거나 외롭거나 흔들리지는 않는다. 영화제의 첫 번째 상영작으로 이 영화를 보는 건, 영화제가 관객에게 보낸 가느다란 연대의 실 끝을 건네받은 것처럼 뭉클한 일이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부산국제영화제가 화면비 1.33 : 1인 이 영화를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상영하면서, 마스킹(스크린에 생긴 여백을 가리는 것)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자꾸만 와이드 스크린으로 영화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김지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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