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성에서 사는 밀려난 가장들의 공동체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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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BIFF] BIFF 찾은 부산 출신 ‘사상’ 박배일 감독




“사상(沙上)은 모래 위라는 뜻입니다. 다들 모래성을 쌓고 무너뜨리면서 모래 위를 살아가고 있지 않나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사상의 주인공처럼 몸과 마음이 아파집니다. 함께 혹은 각자 어떻게 삶과 공동체를 구축해야 할 것인가를 묻는 영화입니다.”

‘사상’으로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은 박배일(38) 감독의 말이다. 부산 출신인 박 감독은 부산의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창작 공동체 오지필름 소속이다. 2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인근에서 박 감독과 만나 부산 지명이 붙은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상’은 BIFF 와이드앵글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 초청을 받았다.

늙은 노동자인 아버지의 일상
재개발 반대 철거민 투쟁 교차
다큐 통해 연대의 뜻 새겼으면

이번 박 감독 작품은 전작과 결이 같으면서도 다르다. 그동안 ‘소성리’(2018) ‘밀양 아리랑’(2014) 등에서 사드 배치,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동네 주민 이야기를 그려 자본의 논리에 어쩔 수 없이 밀려나는 공동체에 주목해 왔다.



박배일 감독의 영화 ‘사상’ 속 장면들.
  BIFF 제공

‘사상’ 역시 살던 곳이 재개발되면서 거리로 내몰린 만덕5지구 사람들의 투쟁을 다뤘다는 점에서는 전작과 같지만, 이번에는 박 감독의 아버지가 등장해 좀 더 개인적인 느낌이 든다. 영화는 부산 사상구 모라동에 살며 한평생 노동자로 살아온 박 감독의 아버지 박성희 씨와 만덕5지구 보상공동대책위 최수영 대표 2명을 축으로 진행된다.

박 감독은 “사상에서 30년 넘게 살았던 늙은 노동자 중에 가장 접근하기 쉬운 사람이라 선택한 거지, 아버지를 탐구하려는 내용은 아니다”며 “아버지를 통해 노동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최수영 대표를 통해 공동체를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총 9년 동안 촬영했고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그는 “원래 2012년 부산영화제 AND 펀드 지원을 받아서 3개월 촬영하고 3개월 편집하면 마무리되겠다는 생각에 출발했다”면서 “그 사이 밀양, 소성리, 국도예술관, 생탁 노동자 등을 찍다 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렸다”고 웃었다.

영화 속에서 아버지는 일을 하다 산재로 손가락을 잃기도 하고 심한 우울증을 앓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버지가 집에서 식사하고, 빨래하고, 운동하는 일상을 보여 준다. 박 감독은 “아버지와 최 대표를 비교해서 보면 재밌다”며 “아버지는 말이 없고 저에게 무언가를 증명하려고 하지 않지만, 최 대표님은 계속 말을 걸고 증명하려고 애쓰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여러 등장 인물이 나오지만, 여성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한 가정을 일구고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두 사람은 평생을 바쳐 일해 왔는데 자본에 의해 폭력적으로 밀려났다”며 “결국 그 속에는 가부장제가 있고 그런 이야기를 위해서 어머니나 여성을 굳이 넣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박 감독은 “다큐이스트이자 활동가로서 ‘사상’을 통해 한 챕터를 매듭지은 느낌”이라며 “세상을 향해 내가 본 세상과 사람을 고백하는 게 다큐라고 생각하는데 그 고백이 많은 사람에게 닿아 연대로 이어지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조영미 기자 mia3@ 사진=최윤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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