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다시, 지역화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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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고 했던가. 그동안 귀가 따갑도록 많이 들어 온 말이다. 하지만 작금의 팬데믹 상황에서 이 말은 전혀 들어맞질 않는다. 지역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는 편이 훨씬 더 급한 일이 되었다. 세계적인 분업 시스템에 제동이 걸리면서 생산과 소비의 지역화가 요구되고 있다. 지역화는 지금의 팬데믹이 세계화가 원인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필요한 일이고 앞으로 지속 가능한 지구 행성을 건사하기 위해서도 긴요한 일이다.

세계적 사고에 지역적 행동을
지역적 사고, 지역적 행동으로
사유·실천 철학마저 바꾼 역병
 
먼저 중심주의 시스템 해체 후
땅과 시간, 사람을 지역화하는
생명권 정치가 파국의 길 막아

지역화를 일찍부터 강조해 온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역화란 경제를 분권화하여 지역 사회와 지방, 국가의 자치를 더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다. 모든 지역 사회가 완전히 독립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되도록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거리를 줄이고, 기업이 독점하고 장악한 글로벌 시장과 로컬 시장의 균형을 잘 잡자는 뜻이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로컬의 순환이 가능한 체계를 만들어 가자는 제안으로, “풀뿌리 운동과 정책 변화”를 함께 수반한다. 세계화는 “전 세계로 더 깊숙이 침투해서 생태계, 지역과 지방 경제, 국가 경제를 빨아들여 중앙에서 관리하는 단일 경제”를 의미한다. 이것이 “영원한 성장과 무시무시한 소비지상주의”를 형성해 왔다.

확실히 코로나19 팬데믹은 국가의 경계를 분명하게 하였다. 그렇다고 지역화가 새로운 국가주의의 도래를 의미하지 않는다. 국가주의 경향을 경계하면서 글로벌 경제 시스템에서 놓여나 새로운 시스템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일국 내의 중심주의 체계를 극복하는 수행을 병진한다. 이러한 점에서 제레미 리프킨이 말한 ‘분산된 전력망’과 같은 에너지 민주주의가 주목된다. 그는 “기후 재난이 벌어져서 한국 전역에서 전력이 나가는 상황이 생기면 국가적인 전력망을 지방에 있는 소규모 전력망으로 변경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한다. 지금처럼 특정 로컬에 발전소를 배치하고 이를 국가가 통제하는 중심주의 시스템이 가지는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 도호쿠 지역의 희생 위에 세계도시 도쿄라는 중심이 자리하듯이 한국도 고리 원전과 같은 로컬 발전소가 수도 서울의 전력을 공급하는 형국이다. 중심과 주변의 철저한 위계 구조를 지닌 종속적 에너지 시스템으로 후쿠시마가 보여 주듯이 무서운 위험을 내포한다. 이러한 점에서 제러미 리프킨이 말한 “수평적으로 분산된 새로운 통치”의 의미가 절실하게 다가온다. 이는 그린 뉴딜과 지역 뉴딜이 국가 중심의 재난 자본주의로 회수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과도 일치한다. 경제를 새로 조직하고 통치 방식을 다시 정립하는 방안이 절실한데 집중과 집권이 아니라 분산과 분권의 시스템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장하성은 지금의 상황을 단기적 효율성 중심의 신자유주의가 바이러스 앞에서 약점을 드러냈다고 진단한다. 코로나19는 세계와 삶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문명의 거대한 전환이 추상적으로 느껴지지만, 생활 세계의 변화를 통하여 이를 이루어 가야 하는 당위에 직면한다. 여기서 생산력 제일주의를 넘어서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한 운동의 전제 조건으로 들고 있는 8R의 과제를 열거해 본다. 재평가(reevaluate), 재개념화(reconceptualize), 재건축(restructure), 재지역화(relocalize), 축소(reduce), 재사용(reuse), 재생(recycle), 재분배(redistribute). 마이클 크로닌은 만약에 이 모두를 줄여서 말한다면 그것은 ‘재지역화’가 된다고 한다. 결국 우리의 몸과 가족 그리고 공동체가 있는 로컬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 없는 민주주의가 환상이라면 로컬 없는 중심의 변혁도 온전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다시 지역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 가장 먼저 중심주의 시스템의 해체가 떠오를 수 있다. 세계 체제나 일국적인 일극 체제에 대한 저항은 준열하게 수행되어야 하고, 지역적인 분권은 확실하게 성취되어야 한다. 따라서 분권 개헌이 필수다. 단지 방역의 지역화만 계기가 아니다. 중심에 흡수되거나 중심을 모방하는 문화 또한 극복되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지역에 바탕을 둔 생명권 정치의 확립이 요구된다.

이는 땅과 시간과 사람을 지역으로 돌려주는 일이다. 다시 지역화하는 일은 그동안 외재화하였던 삶과 사물과 가치를 내재화하는 과정이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가 소환한 크고 작은, 복잡다단한 삶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자본주의 문명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를 추동하는 과학과 기술은? 중심과 주변의 시스템은? 과연 거대한 전환과 새로운 이행이 가능할까. 아니면 파국으로 가는 폐허의 길목에 접어들 것인가. 더 많은 고민과 성찰, 토론과 논의가 있어야겠다.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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