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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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 문화부 공연예술팀장

최근 막을 내린 한 전시회의 제목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구가 코로나 시대 문화예술계를 지켜보며 자주 떠오른다. 우리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시간을 보냈고 또 보내고 있다. ‘셧 다운’ 되었다가 풀리기를 반복하며 시민들도 조금씩 새로운 형태의 생활 방식에 적응하고 있다.

문화예술계도 마찬가지다. 코로나로 공연·전시·축제가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았던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문화적 일상을 조금씩 회복했다. 지금은 비대면과 사회적 거리 두기를 적절히 활용하는 형태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미술관은 사전예약 관람제가 자리 잡았다. 온라인으로 개막한 2020 부산비엔날레도 추석 연휴부터 오프라인 관람객을 받고 있다. 소극장의 연극 공연도 대형 극장의 음악, 무용 공연도 방역기준을 준수하며 관객을 받고 있다.

시 축제·행사 예산 삭감 추진 반발
문화축제는 경제적 파급효과도 커
어려울 때일수록 ‘문화력’ 더 필요
부산시민 문화헌장 취지 되새겨야

한때 개최를 못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던 부산국제영화제는 순항 중이다. 지난 15일 티케팅이 시작되자마자 인기 상영작의 매진이 속출했다. 레드 카펫은 없어졌지만 영화인과 관객들은 그 어느 때보다 뜻깊은 ‘영화의 시간’을 나누고 있다. 지난 주말 남포동 극장가에서 열린 영화 ‘1번가의 기적’ 미스터톡에 참여한 배우 하지원이 눈물을 흘린 이유도 여기 있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다”는 말은 무대 위의 예술인과 객석에서 박수를 보내는 시민 관객 모두에게 해당된다. 그런데 정작 부산시의 문화행정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 답답한 마음이 든다. 코로나19로 시의 재정 상황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이유로 축제·행사 일괄 30% 삭감이 추진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말도 안 된다’는 소리부터 튀어나왔다.

예산 편성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건 알지만 너무 한 거 아닌가 싶었다. 현장에서도 “30% 삭감이 현실화되면 제대로 행사를 할 수가 없다”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지역 문화예술계 원로 한 분은 “그 소리를 듣고 어찌나 열이 나던지. 조선통신사 축제 관련 지인들을 만나서도 다같이 열을 냈다”고 전했다.

전 분야에 걸친 축제·행사 예산 삭감안에 문화예술계가 더 격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시의 문화행정에 대한 실망이 누적된 결과다. 문화도시 부산, 문화의 시대라고 말은 하면서 정작 부산시가 예산이나 정책에서 문화와 예술의 가치를 반영하는 모습을 별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화는 늘 경제 논리에 뒤로 밀렸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면 부산국제영화제가 있어 부산이 영화산업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다. 하나의 문화 축제가 있으면 무대 위 예술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행사 지원 인력, 공연기술 회사, 홍보물 제작업체 등 다양한 산업 분야가 연관되어 있다. 비대면 행사의 경우 영상·IT 산업과도 연결된다. 경제 논리를 따지니 이런 이야기를 했지만 무엇보다 문화예술은 사람을 정서적으로 채워준다. 이것만으로도 문화예술의 가치는 차고 넘친다. “문화예술은 어려움을 이겨내는 공감·공동체 의식을 이끌 정신적인 힘을 준다. 어려운 만큼 더 지원해서 문화력을 키워가야 하는데 시가 그런 인식을 갖고 있지 않아 아쉽다.” 한 문화계 인사의 말은 아무리 어려워도 ‘문화’를 놓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올해처럼 행사를 못 할지도 모르니 내년 축제·행사의 예산을 일단 삭감부터 하고 보는 것은 코로나 이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단견 행정이다. 코로나 이후 부산이 국제관광도시로 비상하기 위해서도 풍부한 문화 자산은 필수 요소다. 또 코로나 시대에 맞춰 사회 곳곳의 체계를 정비하듯 축제·행사도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면 무조건 일괄 삭감이 아닌 적절한 지원을 해주면서 대안을 찾도록 해야 한다. 코로나가 지속된다고 모두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문화예술인도 시민도 ‘현장’에서 문화로 소통할 수 있기를 원하고 있다.

‘문화는 우리 삶의 토대이자 생활양식이다.’ 오늘 오후 선포식을 가질 ‘부산시민 문화헌장’ 전문의 첫 문장이다. 문화헌장은 우리가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를 지켜가야 하는지 알게 해준다. 13개 조문을 하나씩 읽어본다. 마지막 열세 번째 조문 ‘부산시의 책무’가 눈에 들어온다. ‘부산시는 이 헌장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정책적, 재정적 조치와 그 밖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조치를 지속적으로 강구하고 실천하여야 하며… 시민사회와 지역의 모든 공공기관에도 이 헌장이 천명하는 문화적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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