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기’ 사원 교육장 전락 창업 밸리 ‘부산 유라시아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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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원도심 일대를 재생시키고 창업 밸리 거점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부산역 부산 유라시아 플랫폼. 정종회 기자

390억 원이 투입돼 원도심 일대를 재생시키고 창업 밸리 조성 거점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부산 유라시아 플랫폼(이하 유라시아 플랫폼)이 개관한 지 1년 만에 거대 대관 시설로 전락했다.

부산역 광장에 지어진 플랫폼에는 당초 스타트업이 입주할 것으로 예상됐던 것과는 달리 대부분 부산시 사업 위탁 운영기관들이 입주한 데다 나머지 공간들도 단순 행사 대관 장소로만 사용되고 있다.

창업 관련 없는 행사 대관 수두룩
정당 행사·저널리즘 캠프 등 열려
개장 후 스타트업 입주 기관 ‘전무’
18개 공간 중 미입주 8곳 달해
원도심·창업 밸리 조성 목적 ‘무색’


28일 유라시아 플랫폼을 위탁 운영하고 있는 부산도시재생지원센터에 따르면 플랫폼 공간 18곳 중 스타트업 관련 입주기관은 단 한 곳도 없다. 입주 예정기관들도 단순 부산지역 관련 홍보와 관련된 곳들이다. 현재 입주를 완료한 10곳 중 3곳은 부산도시재생지원센터, 부산시설공단, 동부경찰서 역치안센터다. 7곳도 시 업무 위탁 운영기관들이 입주해 있어 당초 창업밸리를 조성하겠다던 본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나머지 공간은 입주조차 완료하지 못했다.

유라시아 플랫폼은 전국 제1호 도시재생 경제기반형 국가 선도사업에 선정돼 지난해 9월 개관했다. 시는 유라시아 플랫폼에 창업 밸리를 조성해 원도심 일대를 재생하고 부산역 인근 창업자와 투자자, 기업 및 연구기관 등이 협업하는 혁신 창업 클러스터로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입주 기관들이 대부분 시 사업 위탁 기관인 데다가 입주기관 간 협업이나 공동 프로젝트는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나머지 공간도 도시재생과 창업네트워크와는 거리가 먼 용도로 대관되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1년간 공간 5곳의 대관 건수는 총 294건이다. 이 중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총선기획단 회의’ ‘청소년 자살예방 교육프로그램 강사양성 교육’ ‘2020 청년저널리즘 캠프’ 등 창업과 전혀 관련 없는 행사들도 대관이 허용됐다.

심지어는 한 정수기 렌털 회사의 사원교육을 위한 대관도 이뤄졌다. 유라시아 플랫폼 대관은 대관위원회 협의를 통해 취지에 맞는 행사만 허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위원회는 열린 적이 없으며 여태껏 반려된 행사도 없었다. 사실상 모든 내용의 행사가 가능한 셈이다.

부산시는 입주 기관들이 전부 창업지원과 관련된 위탁기관이고, 대관의 경우도 시민 모두가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는 데 취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입주기관들은 모두 창업을 지원하고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들이다. 스타트업이 들어오지 못한 건 부산역 주변에 공실이 많은데 특정 기업에 공간을 내어 주게 되면 주변과 마찰이 있게 된다”고 말했다. 대관의 경우도 접근성이 좋은 부산역에서 시민들이 원하는 모임이나 행사를 가지게 하자는 데 그 취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당초 소프트웨어에 대한 고민 없이 예산을 확보하고 건물을 짓고 보자는 식의 도시재생이 민낯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시재생 관련 건설팅 업계 한 관계자는 “결국 사람은 없고 건물만 남은 도시재생 실패의 표본이다. 원도심과 북항을 연결하고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창업밸리로 조성되기보다는 부산시민과 단절되는 결과만 남겼다”고 말했다.

공간의 용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부산시의회 김진홍 의원은 “대관 자체가 잘못 됐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결국 입주기관과 대관 내용을 살펴보면 왜 이 공간이 하필 부산역에 있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없는 사례들이 많다”며 “결국 출범 당시 모호한 플랫폼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시민의 광장을 빼앗은 만큼의 부가가치를 창출했는지는 의문이다”고 꼬집었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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